[지음지교를 꿈꾸며]피아니스트 이경숙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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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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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또 배려… 현과 건반 ‘33년 앙상블’

16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 있는 피아니스트 이경숙의 연습실을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찾았다. 이경숙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의 피아노부를 쳤고 이성주는 바이올린 선율을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6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 있는 피아니스트 이경숙의 연습실을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찾았다. 이경숙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의 피아노부를 쳤고 이성주는 바이올린 선율을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79년 스물네 살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홍콩에 첫발을 디뎠다. 2년 전 뉴욕 데뷔 공연을 한 뒤 미국 전역과 유럽, 아시아 순회 연주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때였다.

그즈음 홍콩은 클래식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젊은 스타 바이올리니스트가 왔지만 무대에서 호흡을 맞출 피아니스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서른네 살의 피아니스트 이경숙이 나타났다. 당시 이경숙은 홍콩에 머물며 연주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었다.

“음악계 대선배인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어찌나 떨리던지요. 파트너로 연주하는 거니까 제 의견도 얘기해야 하는데 그때는 아무 말도 못했죠.(웃음) 지금은 부모님이 저보다 선생님을 더 좋아한다고 하실 정도예요.”(이성주·57)

“33년 전 일인데 기억이 생생하네요. 바흐의 ‘샤콘’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연주했죠. 조그만 한국 여인의 열정적인 연주가 홍콩 관객을 무척 놀라게 했지요. ‘한국에 이런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느냐’는 인사를 많이 받아서 굉장히 뿌듯했어요.”(이경숙·67)

현악기 연주자들은 한결같이 ‘소리궁합’ 잘 맞는 피아니스트를 갈구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도 “피아니스트를 구하는 일이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자주 토로한다. 각자 이름 난 솔리스트인 데다 열 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두 사람의 협연 무대는 꾸준히 이어졌다. 의미 있는 순간도 늘 함께였다. 이성주가 한국에 정착한 뒤 1995년 처음으로 연 독주회, 2007년 그의 뉴욕 데뷔 30주년 기념 연주회도 이경숙이 피아노를 맡았다.

“대가이신데도 배려를 많이 해주세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자기 식으로만 연주하면 금세 불편해져요. 앙상블 맞추다가 언성이 높아지거나 얼굴 돌리고 연주하는 팀도 있거든요.”(이성주)

“이성주 선생과는 연주 스타일과 음악적인 생각이 비슷해요. 앙상블은 결혼생활과 비슷해요.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하모니가 이뤄지지 않거든. 이제 이 선생이 요구사항도 거침없이 막 말해요. ‘그 부분 좀 작게 해주세요’ ‘거기 소리가 너무 커요’ 이렇게요.(웃음)”(이경숙)

학구파라는 점도 닮았다. 이경숙은 1988년 국내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완주를 시작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등을 연주했다. 이성주는 2009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2010년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2011년에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완주했다.

미국에서 솔리스트로 활약하던 이성주가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를 맡으며 귀국한 것도 이경숙의 ‘작업’ 때문이다. 이경숙은 올해 20주년을 맞은 한예종의 창립 멤버. 그는 “당시 해외 연주자 스카우트에 공을 들였는데 마침 공연 차 이성주 선생이 서울에 왔기에 ‘뻥’도 좀 쳐가면서 꼬드겼다”고 회상했다.

이성주에게 이경숙은 인생 선배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느라 지치고 힘들 때면 늘 찾아가 상담을 해왔다. 이경숙은 이성주의 장점으로 무엇이든지 스스로 이해가 갈 때까지 배우려는, 열린 자세를 꼽았다.

올해 이성주는 데뷔 35주년을 맞았다. 연말에 준비하는 기념 연주회 때 이경숙과 다시 한 번 음악의 기쁨을 누릴 생각이다. “완벽한 파트너는 없어요. 음악에도 완벽이란 없지요. 서로 다른 아이디어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 음악의 매력이자 앙상블의 매력입니다.”(이경숙)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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