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으려는 자, 유방의 ‘빈 그릇 채우기’ 전략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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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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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드라마 ‘초한지’ 열풍… 이윤호 교수-이남훈 작가-김형철 위원의 ‘초한지 이야기’

‘초한지’를 10번 넘게 읽었다는 이윤호 성공회대 객원교수와 ‘샐러리맨 초한지’ 저자 이남훈 작가, 김형철 구루 피플 
전문위원(왼쪽부터). 세 명의 ‘초한지’ 마니아는 “초한지를 비롯해 동양 고전이 최근 각광 받는 이유는 현상 이면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초한지’를 10번 넘게 읽었다는 이윤호 성공회대 객원교수와 ‘샐러리맨 초한지’ 저자 이남훈 작가, 김형철 구루 피플 전문위원(왼쪽부터). 세 명의 ‘초한지’ 마니아는 “초한지를 비롯해 동양 고전이 최근 각광 받는 이유는 현상 이면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중국 고전 ‘초한지’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중국 영화 ‘초한지-천하대전’이 11일 개봉했고 신약 개발을 둘러싼 기업 간 경쟁으로 ‘초한지’를 각색한 SBS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13일엔 자기계발서 ‘샐러리맨 초한지’(중요한현재)도 나왔다. ‘초한지’는 춘추전국시대 말기부터 진시황의 진나라를 거쳐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치열한 쟁투 끝에 한나라로 통일되기까지 20여 년의 이야기를 담은 고전이다. 천하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영웅호걸의 각축전이 2000년을 훌쩍 뛰어넘은 2012년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올해는 세계적으로 정치 급변이 예고된 해다. 경제위기 속에서 생존에 대한 욕구도 커지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초한지를 통해 삶과 미래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하는 바람이 초한지 열풍을 낳았다.”

‘초한지’를 10번 넘게 읽었다는 초한지 마니아들의 해석이다. 이남훈 작가(40)는 ‘샐러리맨 초한지’의 저자, 이윤호 성공회대 객원교수(50)와 김형철 구루 피플 전문위원(47)은 이 책의 자문역을 맡았다.

이 작가는 “1% 특권층인 항우와 나머지 99%를 상징하는 유방의 싸움에서 유방이 이겼다는 것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해석했다. 유방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며 40세가 되도록 지방 한직에 머물렀다. 무장 가문에서 태어난 항우는 학식과 전투능력 모두 출중했으며 직접 참여한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유방은 자신의 ‘빈 그릇’에 수많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채워 넣었다. 반면 이미 잔뜩 채워진 항우는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했고 독단적인 결정을 일삼았다. 이 차이가 승부를 가른 것이다.”

김 위원은 “유방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생존했다고 보는 게 옳다”고 분석했다. 진시황의 폭정으로 민생이 파탄난 당시의 시대적 요구는 ‘백성의 평안’이었다. 하지만 항우는 진시황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항복한 진나라 병사 20만 명을 모조리 죽이는 집단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반면 유방은 항복한 이들을 살려주고 진나라 악법을 모두 폐지했다. 백성의 지지를 기반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12월 대선에서도 ‘비어 있는’ 사람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점쳤다. 예를 들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같은 정치 초보가 대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 교수는 “안 원장이 정치를 모른다는 우려도 있지만 시선을 달리 해 보면 빈 그릇이기에 유방처럼 수많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채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도 “유권자들이 ‘안철수’로 상징되는 새 인물을 지지하는 이유는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함께 채워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초한지’의 등장인물들을 선과 악으로 분명히 나누기는 쉽지 않다. 유방과 항우 모두 이기기 위해 온갖 모략과 술수를 쓴다. 세 사람은 “그래서 선악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우리 시대에 적합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공법만으로는 모든 싸움을 이길 수 없다. 때로는 모략과 술수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 현대인이 이를 융통성 있는 방식, 즉 노하우로 발전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이 작가)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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