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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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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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 일민미술관서 동아미술제 전시공모 당선작 전시회

‘여의도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전에선 해외여행과 이주의 경험이 녹아든 물건과 예술작품이 한데 어우러지며 추억을 돌아보는 재미를 안겨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여의도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전에선 해외여행과 이주의 경험이 녹아든 물건과 예술작품이 한데 어우러지며 추억을 돌아보는 재미를 안겨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미제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여행가방, 일제 전기밥솥과 선풍기 등 재활용품 가게도 안 받아줄 법한 구닥다리 물건부터 요즘 각광받는 명품 핸드백과 구두, 넥타이까지 온갖 물건이 버젓이 미술관에 모셔져 있다. 처음엔 머리를 갸우뚱하다가 벼룩시장이나 시장에 온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된다. 시공간을 거슬러가 오래된 물건을 구경하면서 관객 자신의 여행에 얽힌 사연과 추억의 속내를 헤집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29일까지 열리는 ‘여의도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전은 2011 동아미술제 전시기획 공모 당선작 전시다. 전시기획자 이혜원 고동연 씨는 지난 50년 동안 여러 목적과 이유로 해외에 나갔던 사람들이 가지고 온 물건들, 작가들이 여행과 이주를 주제로 제작한 예술작업을 뭉뚱그려 색다른 전시를 꾸몄다. 이 씨는 “유학 생활 중 아버지는 파월 장병으로, 어머니는 독일 파견 간호사로, 아들은 중동에 일하러, 딸은 미국 유학을 떠났던 친구 가족의 삶을 접한 것이 전시의 실마리”라고 소개했다. 디스플레이를 맡은 작가 오인환 씨는 복잡한 이야기의 가닥을 정리해 볼거리 풍성한 전시를 꾸몄다.

남들 눈에는 잡동사니처럼 보일 수 있는 물건과 뒤섞여 사진, 영상, 설치작품이 끼어든다. 물건을 대여한 일반인과 작가 등 100여 명이 참여한 전시는 작품과 상품, 작가와 기획자, 미술관과 박물관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를 기점으로 1층은 1989년 이후, 2층은 그 이전의 물건들로 꾸몄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 파독 간호사, 중동 근로자 등 현대사의 한 시절을 증언하는 2층 전시의 울림이 오래 남는다. 파월 장병의 카메라와 전축, 중동 근로자가 사온 시계와 선글라스 등 개인적 선택을 담은 물건 속에 시대상이 엿보이고, 책장이 다 닳은 영어사전과 새터민의 한국말 배우기 노트 등 여행의 경험을 기억하는 기록물도 인상적이다.

조각가 김상균 씨는 물건 대여자에게 여행 기념품과 자신의 예술작품을 맞교환하자고 제안하지만 퇴짜 맞은 과정을 설치작품 ‘공정거래’에서 보여준다. 추억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란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우리가 의미 부여를 한다면 아무리 사소한 물건도 예술작품만큼 소중할 수 있다는 것. 어느 것이 상품이고 무엇이 예술인지 따질 필요가 없는 추억의 만물상 같은 전시가 주는 선물은 바로 그것이다. 무료. 02-2020-206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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