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간신, 입에는 꿀 배속엔 칼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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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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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론,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징즈웬 황징린 지음·김영수 편역/536쪽·1만8500원·왕의서재

춘추시대 제나라 간신 역아는 환공의 환심을사기 위해 세 살 난 아들을 죽여 요리로 만들었다. 이후 중국에선 ‘역아가 아들을 삶다’는 말이 생겨났다. 권력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간신을 상징한다. 왕의서재 제공(왼쪽), 송나라 장군 악비의 무덤 앞에는 무릎을 꿇은 간신 진회의 모습을 표현한 상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던진오물로 더렵혀진 상의 모습. 왕의서재 제공
춘추시대 제나라 간신 역아는 환공의 환심을사기 위해 세 살 난 아들을 죽여 요리로 만들었다. 이후 중국에선 ‘역아가 아들을 삶다’는 말이 생겨났다. 권력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간신을 상징한다. 왕의서재 제공(왼쪽), 송나라 장군 악비의 무덤 앞에는 무릎을 꿇은 간신 진회의 모습을 표현한 상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던진오물로 더렵혀진 상의 모습. 왕의서재 제공
중국 항저우에는 송나라 장군 악비의 사당이 있다. 금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거간(巨奸) 진회의 모략으로 처형된 악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장군의 무덤 앞에는 포승줄에 묶여 무릎을 꿇고 있는 진회 부부의 상이 놓여 있는데, ‘침을 뱉지 마시오’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청나라 건륭제 때 과거에 장원급제한 진간천은 “송나라 이후 사람들은 ‘회’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나는 ‘진’이라는 성에 참담해하는구나”라는 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는 진회의 후손이었다.

간신(奸臣)에 대한 역사의 심판은 엄정하다. 그럼에도 간신은 끊임없이 등장해 군주를 포악하게 만들고, 충신을 모함하며, 조정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해 나라를 팔아먹기도 한다.

1991년 중국 런민대 출판사에서 나온 ‘변간신론(辨奸臣論)’을 편역한 이 책은 중국 역사 5000년을 넘나들며 수많은 간신과 그들의 패악을 구체적으로 알린다. 또 ‘육도’ ‘사기’ ‘위세가’ ‘여씨춘추’ ‘한비자’ 등 고전을 기반으로 간신을 구별하고 제압하는 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사리사욕과 권력욕, 시기와 질투, 아첨, 이기심, 사기와 속임수, 지나친 공명심, 패거리 짓기, 간악함, 구밀복검(口蜜腹劍·말은 정답게 하나 속으로는 해칠 생각이 있음) 등이 간신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하지만 간신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혼란한 사회가 잉태한다고 강조하는 점에서 이 책은 특히 흥미롭다. 즉, 간신이라는 존재는 사회와 인간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구현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사회 질서가 문란해지면 야심가와 음모가들이 우리를 뛰쳐나온다. 이럴 때는 사상과 도덕을 교육할 겨를이 없고, 감독 기관은 마비되며, 사람들의 도덕 수준은 떨어진다. 각종 파벌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며, 이단 종교가 위선의 탈을 뒤집어쓴 채 사악한 교리를 펼친다. 조고, 석현, 동탁, 진회 등은 이런 사회 혼란의 와중에서 간신이 된 자들이다.”(4장 ‘간신을 잉태하는 사회’ 중에서)

역자는 “이 책은 봉건적 군주제에서의 간신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제도와 법이 상대적으로 잘 정비된 현대사회에서도 간신은 여전히 나타난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욕(私慾)’, 즉 ‘간성(奸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와 조직이 건강할 때는 이 같은 간성이 잘 표출되지 않을뿐더러, 드러난다고 해도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치가 혼란하고 사회 기강이 흐트러지면 간성은 여기저기서 나타나 패악을 떨친다. 우리나라 역시 정권 말이면 ‘간신 공방’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누구나 간신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내 안의 간성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게 스스로를 단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간신의 특성과 패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책은 좋은 ‘백신’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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