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순직 조종사 부인 모임 순조회 “회원 늘지 않는 게 우리 소원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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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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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늘지 않는 게 우리 소원인데… 남편 떠올리며 ‘正자 삶’ 삽니다”


“애들은 잘 놀고 있지? 이제 출발하니까 피곤하면 먼저 자.”

1969년 1월 24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화가 왔다. 임무를 앞두고 남편은 항상 내게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흘렀을까. 전화가 없었다.

‘임무를 마쳤을 텐데….’ 항상 일이 끝나면 아무리 피곤해도 전화 한 통은 꼭 넣어준 남편이었다.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만약 남편이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본다면 분명 “괜한 상상 하지 말고 얼른 잠이나 자”라고 말했을 게다.

‘그래.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불길한 생각을 하면 왠지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억지로 자리에 누웠다.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몇 시간을 뒤척인 뒤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전화가 왔다. 남편인 줄 알고 얼른 받았다. 그런데 남편 목소리가 아니었다. 부대 관계자였다. 수화기 너머로 침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군께서 어제 야간 임무 도중 사망하셨습니다.”

○ 온몸의 피가 발가락으로 몰려

손이분 씨(72)는 아직도 수채화를 그리듯 그날을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해 내곤 한다. 온몸의 피가 엄지발가락으로 몰리는 느낌. “오늘도 엄청 고생했다”면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막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남편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아니 납득이 되질 않았다. 조금 뒤 다른 조종사 부인들이 관사에 찾아와 손 씨를 위로했다. TV에는 남편의 사고 소식이 메인 뉴스로 나왔다. 그때서야 실감이 났다. ‘그이가 이제 정말 여기에 없구나.’

당시 서른 살이던 손 씨는 막막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한 그에겐 공군 장교로 구조 헬기를 조종하던 남편이 사실상 전부였다. 장례식을 치르고 한동안 멍하게 지내던 그가 다시 마음을 잡은 건 순전히 자식들 때문이었다. 당시 5세, 3세이던 두 형제의 눈을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겠구나. 그래야 먼저 간 그이의 자존심도 지킬 수 있다.’

그 뒤 손 씨는 지독하리만치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에겐 항상 이런 얘기를 해줬다. “아버지는 사나이로 태어나서 누구보다 멋지게 살다 가셨다. 그러니 너희도 어깨 펴고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야 한다.”

큰아들은 결혼을 앞두고 손 씨에게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썼다. ‘제가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께서 제게 해준 그대로 가르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손 씨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하늘에 있는 남편을 향해 속으로 외쳤다. ‘보고 있어요? 당신 못지않게 저도 멋있는 사람이죠?’

이준신 씨(56)의 남편 박명렬 소령(공사 26기)은 1984년 F-4E 전투기를 몰고 훈련에 참가했다 사고로 순직했다. 이 씨는 힘든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고 아이들을 길렀다.

사고 당시 5세이던 큰아들은 대학에 진학할 무렵 공군사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 씨의 만류에도 아들은 “하늘에서 아버지의 발자취를 느끼고 싶다”며 결국 사관학교에 갔고, 조종사 제복을 입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들인 박인철 대위(공사 52기)는 2007년 KF-16 전투기를 몰고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사고로 순직했다. 박명렬 인철 부자(父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됐다. 1943년 현충원이 조성된 이후 부자가 나란히 안장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씨는 남편과 아들을 보기 위해 지금도 현충원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으려고 한다. “저라도 여기서 씩씩하게 지내야죠. 남편과 아들은 제가 눈물 흘리는 걸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하늘에서 재회하면 그때 흘릴 기쁨의 눈물을 아껴둬야죠.”

○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데

손 씨와 이 씨는 모두 ‘순조회’ 회원이다. 1970년대 초반 조종사 남편을 사고로 잃은 부인들이 모여 만든 이 단체는 ‘은나래회’로 활동하다 최근 순조회로 이름을 바꿨다. 성격 자체는 ‘비운의 모임’이지만 회원들의 열의와 활동만큼은 어느 단체보다 뜨겁다. 친목 도모를 위해 매달 한두 번 모임을 가지는데 30명가량의 회원이 꾸준히 참석한다. 단체는 회원들의 취업을 주선하고, 회비를 거둬 회원 자녀에게 학비 지원과 위로금도 전달한다. 자원봉사도 빼놓을 수 없는 활동 가운데 하나.

비록 남편은 세상을 일찍 떴지만 그들과 함께 살았던 부인들의 자긍심은 남편 못지않다. 한 회원은 “사고로 남편의 시신조차 발견하지 못해 아직도 가슴이 찢어진다”면서도 “그래도 먼저 떠난 남편을 생각해 한순간도 바를 정(正)자로 생활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5일 두 명의 희생자를 낳은 T-59 훈련기 추락사고 소식이다. 순조회 회장인 손 씨는 “회원이 늘지 않아야 하는데…”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또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며칠 동안 식욕이 없어지고 가슴까지 두근거린다”며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손 씨는 무거운 마음을 누르고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을 찾아 어려운 발걸음을 할 계획이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달려가 부둥켜 안아주고 싶죠. 하지만 일단은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하니….”

만나면 어떤 말을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을까. “그냥 손을 꼭 잡아줘야죠. ‘그래도 좀 시간이 지나니 살아갈 용기가 생기더라.’ 지금은 이 말밖에 생각이 나질 않네요.”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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