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문학창작촌 ‘동네 창작소’로 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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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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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문인운영위 폐지… ‘주민공동협의회’ 만들어 개방 추진

연희문학창작촌은 나무들과 산책길이 어우러진 호젓한 공간이다. 7일 오전 10시에 이곳을 찾았을 때 야간집필을 한 작가들이 집필실에서 잠을 자고 있어 인적이 드물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연희문학창작촌은 나무들과 산책길이 어우러진 호젓한 공간이다. 7일 오전 10시에 이곳을 찾았을 때 야간집필을 한 작가들이 집필실에서 잠을 자고 있어 인적이 드물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집필실에서 작업 중인 ‘제리’의 소설가 김혜나 씨(위)와 서고 및 휴식 공간인 ‘미디어랩’.
집필실에서 작업 중인 ‘제리’의 소설가 김혜나 씨(위)와 서고 및 휴식 공간인 ‘미디어랩’.
도심 속 창작 공간으로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이 개관 2년여 만에 큰 변화를 맞고 있다. 문인들이 직접 관리하고 이용했던 이 공간의 운영에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것. 그러나 문인들의 우려도 적잖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작가들의 집필 활동에 방해를 줄 수 있어 시민만 있고 작가는 없는 공간이 될지 모른다”는 염려다.

2009년 11월 개관한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가 만들어 서울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으며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 강원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과 함께 국내 대표적 문인 창작촌으로 꼽혀왔다.

지난달 서울시는 연희문학창작촌의 운영위원회를 폐지하고, 주민과 지역문화인 등이 참여하는 ‘주민공동협의회’를 신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존 운영위원회는 문인 7명으로 구성돼 창작촌 운영 및 향후 계획을 문인 스스로 결정하는 형태였지만 새로 출범하는 주민공동협의회는 입주 작가를 포함한 문인 3명 외에 주민, 지역문화단체장, 서대문구 문화담당자, 문학단체 간부를 참여시켜 총 7명 이상이 참여한다. 문인 외의 인사가 절반을 넘는 셈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의 주민 참여 확대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펼치고 있는 ‘참여 시정(市政)’의 일환이다. 서울시 문화사업팀 관계자는 “예술가들만 소통하는 것은 의미가 적다. 행정적으로는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주민들의 참여를 제도화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연희문학창작촌은 대지 6915m², 총면적 1480m²의 공간에 건물 4채, 집필실 20개, 공동휴게실, 산책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입주 경쟁률이 3 대 1을 웃돌며 작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운영위원들이 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문단 활동과 향후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입주 작가를 선정했다. 신달자 은희경 성석제 김인숙 김사인 백가흠 백영옥 등 문인 100여 명이 이곳을 거쳐 갔다.

시는 갓 등단한 작가나 등단 전인 작가지망생에게 집필실을 내주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유명 작가들에게 치중됐던 집필실의 문호를 일반인들에게 넓히자는 취지다. 하지만 연희문학창작촌을 거쳐 간 문인들은 “지금도 시낭송회나 문학치료 등 주민 참여 행사가 많다. 시민들이 상주할 경우 작가들의 집필 활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달자 시인은 “창작촌은 ‘순전히 분위기’다. 훌륭한 작가가 많이 들어와서 서로 자극하고 분발해 큰 작품을 써내자는 게 창작촌의 기본 취지인데 그게 훼손될 수 있다”며 “연희문학창작촌은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공간’이어서 문인들이 찾았는데 (일반)사람이 많이 오면 그 매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수 시인은 “습작생 정도는 입주를 고려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효율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문청(文靑)이라는 것은 가난해야 하는데 좋은 방 잡아주면 좋은 작품이 나올까. 주민 참여는 좋지만 어떻게 참여시킬까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희문학창작촌이 ‘동네예술창작소’로 변할 것이라는 걱정도 문단에선 나온다. 동네예술창작소는 박 시장의 주요 문화 공약 가운데 하나로 서울 25개구에 주민이 이용하는 예술 창작공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서울시 문화사업팀 관계자는 “연희문학창작촌이 동네예술창작소로 변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둘은 별개의 사업”이라며 “연희문학창작촌의 최종 운영 방안은 의견 수렴을 통해 내년 초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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