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지교를 꿈꾸며]극작가 최치언 씨-연출가 이성열 씨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대학로 ‘최고의 실속 콤비’

술친구로 만나 작가와 연출가로서 뒤늦게 꽃피우고 있는 극작가 최치언 씨(왼쪽)와 이성열 극단 백수광부 대표. 최 씨는 인터뷰 틈틈이 이 대표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구했고, 이 대표는 멘토처럼 자상한 답변을 아끼지 않았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술친구로 만나 작가와 연출가로서 뒤늦게 꽃피우고 있는 극작가 최치언 씨(왼쪽)와 이성열 극단 백수광부 대표. 최 씨는 인터뷰 틈틈이 이 대표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구했고, 이 대표는 멘토처럼 자상한 답변을 아끼지 않았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극작가 최치언 씨(41)는 시, 소설, 희곡 3개 장르의 등단 코스를 모두 밟았다. 시는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은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희곡은 2003년 우진문화재단 장막희곡 공모에 당선했다. 그런 그가 올해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도 소설도 아니고 가장 늦게 데뷔한 희곡으로.

그 작품이 지난 주말 서울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재공연을 마친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미친극’이다. 최치언 작가가 대본을 쓰고 백수광부의 이성열 대표(49)가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상복이 터졌다. 2010년 창작팩토리 희곡부문 최우수작, 올해 연극우수작품 재공연지원작에 선정된 데 이어 대산문학상 희곡부문 대상까지 수상해 지원금과 상금을 합쳐 1억75000만 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최치언-이성열 콤비가 연극계 최고의 실속파”(심재찬 국립극단 사무처장)라는 말도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 콤비는 이번 주 다시 세 글자 제목의 연극을 올린다. 2일 대학로 같은 극장에서 개막하는 ‘언니들’이다. 2009년 극단 뚱딴지에서 초연해 대한민국연극대상 희곡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로써 두 사람은 2008년 극단 파티의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재공연까지 3편에서 호흡을 맞췄다.

내년엔 5편으로 늘어난다. 국립극단이 야심 차게 기획한 ‘삼국유사 프로젝트’ 연작 가운데 한 편인 ‘침대 밑의 처용’과 2011 창작팩토리 희곡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잠자는 숲 속의 옥희’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2004년 최 작가가 ‘올드 보이’란 작품을 각색할 때부터 눈여겨봤어요. 등단 희곡인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제가 동인으로 있던 극단 파티에서 초연했던 2007년, 술좌석에서 어울리게 됐는데 다른 작가들과 달리 잘난 척하는 법 없고 소탈해서 좋은 술친구가 됐어요. 시집을 읽어봤는데 대부분의 시가 연극적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아, 희곡작가로 대성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쓴 희곡이 공연됐을 때 ‘작가의 에너지가 너무 세서 연출가들이 휘둘린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제가 시를 쓰다 보니 감성적 구석이 많은데, 반대로 이 대표님은 이성적이라서 제 작품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게 느껴져요. 대본 수정을 요구하시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그럴 때도 합리적으로 조곤조곤 설명해주시고….”

최치언의 희곡은 다층적이다. 여러 개의 이야기가 겹겹이 얽혀 있어서 복잡한 구조를 가졌지만 그만큼 다양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이를 하나의 관점에 입각해 풀어버리면 엉켜버리기 쉽다. 걸출한 연출가가 많기로 유명한 혜화동 1번지 2기 동인 출신인 이성열 대표의 연출 스타일은 쾌도난마형이 아니라 마부작침(摩斧作針)형이다. 큰 도끼를 갈아서 작은 바늘 하나 만들어내는 끈질김과 섬세함을 갖췄다. 그래서 최치언 희곡의 중층구조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다.

이 대표는 “최 작가의 작품에는 극 전체를 화살처럼 관통하는 한 줄의 대사가 들어있다”며 “그런 대사를 발견할 때 너무 짜릿하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희곡작가는 스토리 작가가 아니라 자국 언어의 묘미를 살려내는 작가가 돼야 합니다. 이 대표의 연극에는 군더더기가 없어서 오히려 제 언어들이 잘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서로의 단점도 들려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인간의 좌표는 잘 보이는데 인간의 심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저런 말 할 때가 제일 싫다. 나름 인간의 감정을 얼마나 깊이 파고드는데…”라고 받아쳤다. 이 대표가 웃으며 답했다. “그런 병적인 정서 말고, 따뜻한 사랑 말야, 사랑.”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