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7개월… 일본 미술은]<1>예술, 일상에 마법을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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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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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일상에 ‘무지갯빛 요술’을 걸다

2011요코하마트리엔날레의 전시장 뱅크아트 스튜디오에선 나무들이 중력을 무시한 채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스웨덴 작가 헨리크 하칸손의 ‘Fallen Forest’란 설치작품이다. 요코하마=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2011요코하마트리엔날레의 전시장 뱅크아트 스튜디오에선 나무들이 중력을 무시한 채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스웨덴 작가 헨리크 하칸손의 ‘Fallen Forest’란 설치작품이다. 요코하마=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가라앉았던 일본 미술계가 차츰 정상 호흡을 되찾고 있다. 국제 규모의 미술 행사로 평온한 일상의 회복을 알리고, 세계에서 주목받은 1960년대 건축운동을 재조명해 자부심을 일깨우며, 시민과 소통하는 소도시 미술관의 전시도 활발하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예술의 존재감을 드러낸 미술현장 세 곳을 소개한다.》
“쿵” “꽈당” “부릉부릉” “으흐흐흐” “끼∼∼익”

얕은 어둠이 깔린 22일 오후 6시 40분 일본 요코하마 시 해안 부두의 낡은 창고건물인 뱅크아트(BankArt) 스튜디오에선 기묘한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미국 작가 크리스천 마클레이 등 200여 관객이 빽빽이 자리한 가운데 한 남자가 만화 속 의성어를 한 시간 동안 목소리로 재현한 것. 일본 만화를 번역한 영문판 만화 중 음향효과를 담은 장면만 오려 콜라주한 마클레이의 ‘망가 스크롤’이 그 대본이었다. 소리를 시각적 문자로, 문자를 다시 소리로 해석하고, 일본 의성어를 미국 의성어로, 이를 일본 의성어로 재번역하는 다층적 의미를 전하는 퍼포먼스였다.

이는 8월 6일 개막해 11월 6일 막을 내리는 2011요코하마트리엔날레의 행사로 마련됐다.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미술축제는 올해 4회를 맞는다. ‘우리들의 마법 같은 시간(Our Magic Hour-How Much of the World Can We Know)’이란 주제 아래 요코하마미술관과 뱅크아트스튜디오를 무대로 77명의 작품을 선보였고 한국작가는 전준호 한성필이 참여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해외 작가의 방문이 취소되거나 작품 임대에 차질을 빚은 데다 절전에 따른 전시 연출에 제한을 받는 등 숱한 장애를 넘어 실현된 미술축제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주최하던 행사를 올해부터 시가 진행을 맡고 기금 측은 특별협력하는 방식으로 도우며 세계적 건축가 단게 겐조가 설계한 요코하마미술관이 주행사장으로 지정된 것도 변화다. 총감독 오사카 에리코 요코하마미술관장은 “재난에 내부적 문제까지 겹쳤으나 폐막까지 총관객 25만여 명이 예상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시는 삶의 수수께끼와 모순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세상의 마법은 모습을 드러낸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예술감독 미키 아키코 씨는 “신화와 전설에 뿌리를 두거나 불가사의한 세계와 일상을 다룬 작업을 통해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잊혀진 가치와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조명했다”며 “큰 시련을 겪은 시점을 고려해 관객의 즐거움을 위한 오감 체험형 작품도 많이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맥락 없이 등장한 작품도 종종 보였으나 기이한 괴물이 등장하는 전통 회화와 괴기 영화 포스터로 구성한 공간, 데이미언 허스트가 죽은 나비로 만든 평면작품과 한국 작가 전준호 씨가 해골로 만든 반가사유상이 서로 마주보는 전시실, 스기모토 히로시의 작품, 대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한 예술프로젝트 등이 눈길을 끌었다. 전반적으로 뱅크아트 전시가 더 참신했다.

일본에선 이 행사를 비롯해 후쿠오카, 에쓰고 쓰마리, 아이치 트리엔날레, 세토우치 아트 프로젝트가 국제 미술축제로 꼽힌다. 이 중 요코하마는 일본 지자체에서 모델 삼는 사례지만 오사카 관장은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비엔날레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다”며 “우리에게도 예산과 내실을 유지하는 지속가능성이 과제”라고 말했다. 비슷한 상황을 맞은 한국도 참고할 대목이다.

전시를 보고 미술관을 나서기에 앞서 투명한 미로 앞에 관객이 줄을 선 모습이 보인다. 신을 벗고 걸어가면 전화가 놓여 있다. 어느 순간 예고 없이 전화벨이 울려 관객이 수화기를 들면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대는 비틀스 멤버인 존 레넌의 부인이자 이 작품을 선보인 오노 요코. 평범한 관객에게 작가와 소통하는 추억을 선물하는 셈이다.

이는 우여곡절 끝에 실현된 트리엔날레의 존재 이유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전시를 보고, 전화를 받는 단순한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경험하는 최고의 마법임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무덤덤한 일상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예술의 힘이 전시를 넘어 치유와 위로의 축제를 펼쳐냈다.

요코하마=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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