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262>孟子가 致爲臣而歸할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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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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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齊(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정치에 대해 조언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제나라 왕이 왕도정치를 시행할 뜻이 없음을 알고 祿位(녹위)를 반환하고 제나라를 떠날 결심을 했다. 그러자 제나라 왕이 숙소로 맹자를 찾아와 만류했다. 그 사실은 ‘公孫丑(공손추)·하’ 제10장에 나온다. 이때 제나라 왕이 ‘이후로도 뵐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不敢請耳언정 固所願也니이다’라고 했다. 예전의 선비들은 상대방의 청탁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때 이 말을 흔히 사용했다.

致爲臣은 신하된 지위를 반환함이다. 곧 祿位(녹위)와 직무를 군주에게 반환한다는 뜻이다. 歸는 본국으로 돌아감이다. 혹은 숙소로 돌아감으로 보기도 한다. 就는 맹자의 숙소로 나아갔다는 뜻이다. 前日은 맹자가 제나라에 이르러 오기 이전의 때를 가리킨다. 侍는 모신다는 뜻인데, 제나라 왕이 맹자를 가까이 했던 일을 두고 겸손하게 말한 것이다. 同朝는 왕과 함께 조정에서 일을 보는 관료들을 가리킨다. 단, 왕이 맹자와 조정에 같이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寡人은 寡德之人이란 뜻으로, 왕이나 제후가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다. 不識은 그 아래의 구절에 걸리는 표현으로,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이란 뜻을 드러낸다. 繼此는 ‘지금까지를 이어 앞으로도’의 뜻이다.

사마천은 ‘사기’ ‘맹자열전’에서, 맹자가 제나라 宣王(선왕)을 섬겼지만 선왕이 그의 理念(이념)을 채용하지 않았고 위나라에 갔지만 梁惠王(양혜왕)이 그의 建言(건언)을 실천하지 않았으니, 맹자의 이념이나 건언을 迂遠(우원)하다 여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정의의 관념이나 주장이 당장의 현실적 효과를 낳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배척되어야 할 것인가? 이 시대에도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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