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조선 말을 잃은 시인 윤동주, 그 恨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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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5일 0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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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주/구효서 지음/427쪽·1만3500원·자음과모음

장편소설 ‘동주’를 펴낸 소설가 구효서 씨. 그는 시인 윤동주가 일제로부터 당한 ‘문학적인 죽음’을 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해 풀어냈다. 자음과모음 제공
장편소설 ‘동주’를 펴낸 소설가 구효서 씨. 그는 시인 윤동주가 일제로부터 당한 ‘문학적인 죽음’을 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해 풀어냈다. 자음과모음 제공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시인 윤동주(1917∼1945)는 민족 저항 시인의 대명사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저항시인 윤동주’가 아니라 ‘시인 윤동주’의 죽음에 주목한다. 형무소에 가기 전 시모가모 경찰서에서 윤동주는 조선어로 쓴 자기의 시들을 강제로 번역해야 했다. ‘사상 검증’이 이유였다. 시인의 언어(조선어)를 빼앗긴 그는 시인으로서 이미 그때 사망했다는 해석이다.

윤동주가 직접 화자로 나서지는 않는다. 그가 교토 유학 시절 살았던 아파트에서 잔일을 하던 ‘요코’의 기록을 통해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살았던 시인을 아련히 되살린다.

‘동주는 조선어를 교토까지 갖고 와 밤이면 남몰래 노트를 펴고 뜨거운 말과 만났다. 시를 쓰고 난 아침이면 그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산책에 나서곤 했다’ ‘동주는 고향과 나라를 모두 일본에 잃고 말까지 빼앗겼다. 어디에 있든 그의 땅이 아니었다. 언어의 영토를 잃은 시인의 슬픔이 느껴졌다….’

요코가 남긴 기록을 읽는 이는 현재 시점에서 살고 있는 재일교포 3세 김경식이다. 그는 정체불명 청탁자의 제의에 고액의 문서검색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일본인 친구가 하루아침에 모습을 감추자 김경식은 친구가 검색한 자료를 바탕으로 친구를 찾아 헤매며 사라진 윤동주의 유고(遺稿)에 점차 접근하게 된다.

작품은 초반 윤동주의 생애와 그 유고를 철저히 타자의 시각으로 추적해 나가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요코가 어릴 적 남긴 기록, 중년이 돼 남긴 기록, 그리고 현 시점 김경식의 모험과 또 그가 한국어로 써가는 기록 등을 중첩해 과거의 윤동주를 점차 현재로 끌어낸다. 흡사 고고학 발굴 조사 현장을 보는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윤동주 유고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한 겹을 벗겨내면 한 사람, 한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언어에 관한 얘기이자 결국 모국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을 그린 소설이다. 윤동주는 만주 간도에서 태어나 조선어에서 자신의 시적 고향을 찾았고, 요코는 모국어인 일본 홋카이도의 아이누어를 익히고, 재일교포 김경식은 한국어를 배우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 요코의 기록에서 윤동주는 이렇게 말한다.

‘말(言)은 젖 같은 거야. 그게 육신이 되고 영혼이 됐을 테니까. 젖과 같은 어머니의 조선말을 나는 먹고 자랐어. 그래서 내가 조선인인 거라고 생각해.’

김경식이 사라진 친구를 찾으면서 작품은 끝나지만 초중반의 거대한 밑그림에 비해 결말은 싱겁다. ‘유고를 추적한다’는 이야기 줄기와 상관없는 요코의 우울한 가정사가 반복되는 것도 지루하다. 본문 초반과 작가의 말에서 개요나 서술방식을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불가피하게 느껴질 정도로, 화자와 시대를 자주 교차시킨 구성은 무척 복잡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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