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에 탈민족주의 흐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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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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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심포지엄

1990년대 후반 이후 역사드라마가 부흥하면서 역사인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왼쪽부터 강한 민족주의 성격을 표방한 ‘주몽’(2006년), 비주류 계층의 삶을 내세운 ‘허준’(1999년), 탈민족적 성격이 강한 ‘추노’(2010년). 동아일보DB
1990년대 후반 이후 역사드라마가 부흥하면서 역사인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왼쪽부터 강한 민족주의 성격을 표방한 ‘주몽’(2006년), 비주류 계층의 삶을 내세운 ‘허준’(1999년), 탈민족적 성격이 강한 ‘추노’(2010년). 동아일보DB
역사는 과거에 대한 현재적 진술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억이 창출된다. 역사가 끊임없이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사드라마가 공동체 기억의 재구성에 끼치는 영향은 정통 역사학보다 결코 적지 않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이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역사드라마의 위상을 감안해 ‘사극에 나타난 역사인식’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22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연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미리 배포한 ‘역사드라마의 세 가지 상상력-강한 민족에서 탈민족으로’ 발표문에서 한국 역사드라마의 변화상을 고찰했다. 기존의 ‘강한 민족주의’ 경향에서 탈피해 1990년대 후반부터 비주류의 삶을 조명하는 ‘약한 민족주의’가 등장했고 2000년대에는 인권 등 인류 보편의 정서를 추구하는 ‘탈민족주의’가 새로 나타났다고 그는 분석했다.

강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드라마는 역사 드라마의 단골 주제다. 현재 방영 중인 ‘광개토태왕’을 비롯해 2010∼2011년의 ‘근초고왕’, 2008년 ‘대왕 세종’이 대표적이다. 2006년에 방영이 시작된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은 고구려를 통해 강력한 민족주의를 시사했다.

비주류의 역사에 주목하며 민족주의를 배경 정도로만 활용하는 드라마로는 ‘허준’ ‘대장금’ 등이 대표적이다. 주 교수는 “이병훈 PD가 주도한 이런 역사드라마는 해당 시대의 권력관계를 기본 축으로 설정한 다음 천민이나 서민 혹은 중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권력의 역사 속에 살아남은 비주류의 성공신화를 그려낸다”며 “민족의 성취와 자부심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약한 민족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엔 민족을 내세우지 않는 역사드라마가 등장했다. 2003년의 ‘다모’, 2010년의 ‘추노’, 2011년 ‘짝패’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여기서 등장인물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허구적 인물이다. 이런 드라마는 민족의 가치나 성공신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의 개인,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성찰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주 교수는 밝혔다.

주 교수는 또 역사드라마는 1990년 후반 이후 역사적 사실보다는 역사적 개연성과 허구성으로 외연을 넓힘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했으며, 드라마의 공간도 기존 조선시대 중심에서 고려시대, 삼한시대로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이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 우리 민족만 강대해지기를 바라는 세계관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한 ‘탈민족적’ 드라마가 새로운 조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김현숙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발표문 ‘고구려 드라마를 통해 본 사극의 기능과 역할’을 통해 “역사드라마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사료가 명백하고 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되는 역사의 기본 줄기는 지키는 가운데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이병훈 PD, 이주환 PD, 김기봉 경기대 교수, 금경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참여해 토론을 진행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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