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우쿨렐레 배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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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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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부르며 장난감 다루듯 즐기면 쉽게 익혀져

우쿨렐레를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우쿨렐레는 배우기 쉽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지 유크매니아 김상철 대표에게 30분 특강을 요청했다.

먼저 악기를 안는 법. 기타와 달리 정말 울림통을 편안하게 감싸 안아야 한다. 기타 연주자처럼 몸통이 허리띠까지 내려오는 자세는 뛰어난 연주자인 제이크 시마부쿠로 정도나 가끔 할 뿐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네 개의 현은 아래서부터 위로 기본음이 라, 미, 도, 솔이다. 기타와는 달리 맨 윗줄의 음이 낮아지지 않고 반대로 올라간다. 그래서 기타보다 음이 경쾌한 느낌이 난다는 설명이다. “평소보다 좀 더 빨리 진도를 나간다”는 말과 함께 C코드를 가르쳐 준다. 왼손 약지로 세 번째 프렛(fret)의 맨 마지막 줄을 누르는 것이 C코드. 이거 하나로도 노래가 된단다. 믿기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C코드만 48번을 쳤더니 정말 귀에 익은 노래가 된다. 집에서 아기에게 숱하게 불러주던 ‘곰 세 마리’다. 나도 모르게 허허, 웃음이 난다. 배운 지 10분이 안 됐다.

김 대표는 우쿨렐레를 배울 때는 항상 노래를 같이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 하면 기타를 배울 때처럼 지루하다. 노래를 같이 하면 실력도 빨리 늘 수 있다는 것.

C7, A―, F 코드를 더 배웠다. C7코드와 A―코드로는 동요 ‘열 꼬마 인디언’을, C7코드와 F코드만으로 한때 국민동요 지위를 누렸던 ‘올챙이 송’을 연주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G7코드를 배웠다. 지금까지 배운 다섯 개의 코드를 활용하면 팝송 ‘유 아 마이 선샤인(You Are My Sunshine)’이 가능했다. 우쿨렐레를 배운 지 25분 만이었다. 물론 그야말로 더듬더듬 수준이지만 한 곡의 노래를 이 짧은 시간에 배워 끝까지 칠 수 있다니 대단히 뿌듯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한다면 폼 좀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솟았다.

지난해 20대 남성이 김 대표를 찾아와 노래 ‘남쪽 끝 섬’을 한 달 안에 우쿨렐레로 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유학을 떠날 여자친구가 우쿨렐레로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는 것. 이 노래는 우쿨렐레를 두 달은 배워야 겨우 칠 수 있는 곡. 결국 그 남성은 한 달 만에 나름대로 이 곡을 숙지했다. 여자친구는 만족했을까? 김 대표는 답을 듣지는 못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처음 우쿨렐레를 배울 때 틀리거나 못한다고 괜히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 있게 하라고 말한다. 자기만 즐거우면 되는 악기가 우쿨렐레이기 때문에 못하더라도 즐거워하면 실력이 는다는 것. 초보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은 결국 ‘진지하지 말라’, ‘심각하지 말라’였다. 우쿨렐레는 놀이다.

사족: 기타보다 코드를 잡는 손가락 끝이 덜 아프긴 하다. 그렇다고 너무 방심해서는 안 된다. 고작 25분 배웠을 뿐인데 기자의 왼손가락 끝은 이틀이 넘도록 얼얼했다.  
▼ 1930년대 한국 상륙… 1969년께 국내생산 시작 ▼

우쿨렐레는 우리나라에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동아일보 기록으로 추정해 보면 일제강점기인 1931년이다. 우쿨렐레가 일본에 도입된 시기가 1929년인 걸 감안하면 생각보다 빨리 한반도에 상륙한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은 동아일보 1933년 9월 17일자 6면의 다음 기사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가을철의 악기-새로 유행하는 요새의 악기는 무엇? 여유 있으면 시험해보시오’(맞춤법은 현대에 맞게 고침)

악기 이름은 우쿨렐레가 아닌 ‘우그레레’로 돼 있다. 기사는 다음과 같다. ‘이것도 2년가량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것인데 요새 부인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대개는 합창의 반주에 사용되는 것이나 혼자서 뜯으며 노래 부르는 것도 가을밤에 좋을 것입니다. 이것은 본래 하와이 토인의 악기였다고 하는데 줄이 네 개 있는 간단한 것으로서 손으로 뜯는다고 합니다. 모양은 둥근 것과 뒤웅박같이 된 것이 있다고 합니다. 하와이에서 만든 것은 싼 것이라야 13원 50전이고 일본서 만든 것도 3원 50전부터입니다.’

그때도 우쿨렐레가 ‘여성의 악기’였으며 울림통의 모양도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13원 50전은 한국은행에 따르면 당시 쌀 한 가마(80kg) 가격(12원 30전∼13원 20전·1932년)보다 비싸다. 그것이 가장 싼 축에 속한다고 하니 세계적 공황에 시달리던 식민지의 일반 가정에서는 구입할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았을 듯싶다. 이 기사는 우쿨렐레와 함께 아코디언, 기타, 오카리나도 소개했다. 일주일 뒤 동아일보에는 개성의 한 악기점을 운영한다는 독자가 우쿨렐레를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묻자 종로와 충무로의 악기점 두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정보가 게재됐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우쿨렐레를 제작한 것은 대략 1969년 즈음으로 보인다. 당시 기타 연주자로 활동하던 김금헌 현 한국우쿨렐레교육협회 고문에게 한 이화여대생이 지인에게서 받았다며 우쿨렐레를 들고 와 연주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는 것. 이후 김 고문은 기타 제조사인 가야악기의 오혁환 대표에게 우쿨렐레를 제작하면 어떻겠느냐고 건의했고 이를 오 대표가 받아들여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신문을 보면 1965년경에 이미 우쿨렐레를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 방식으로 미국에 수출한 한국 업체들이 존재했다.

1960∼1980년대는 통기타의 시대였다. 따라서 우쿨렐레는 기타 연주자들의 소일거리 정도로 명목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1989년에는 이름난 기타교본을 저술했던 연주자 강효순 씨가 동아일보문화센터에서 우쿨렐레를 가르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가수 윤종신 씨가 발표한 4집 앨범 ‘공존’에는 우쿨렐레 연주를 반주로 한 노래 ‘이층집 소녀’가 실렸다. 우쿨렐레 그룹 ‘우쿨렐레피크닉’의 이병훈 씨는 그 무렵 가수 박상민 씨 등의 공연에서 세션을 하다 막간에 우쿨렐레 연주를 선사하기도 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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