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답한다]Q:‘아름다움’은 절대적 가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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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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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인식 주체의 주관적 판단일뿐

《사람들은 인간만이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이나 꽃을 대하면 그것을 보는 인간이 없어도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세계 속에 있는 절대적 가치일까요? 아니면 사람의 인식이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ID: ezy***)》

‘아름다움(美)’을 가리켜 고대 희랍인들은 ‘칼로스(kalos)’라고 불렀다. 이들은 미와 선을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여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즉 ‘선한 미’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그들은 아름다운 것이 곧 선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미적 이상은 기원전 7세기의 시인 사포의 입을 통해 “아름다운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한 아름답다. 선한 사람도 지금처럼 나중에도 변함없으리라”는 시구로 표현되었다.

이런 희랍 고전기의 미적 이상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 폴리클레이토스의 ‘표준율(canon)’이다. 조각가인 그는 ‘황금비율’을 인체 조각에 적용했다. 밀로의 비너스와 벨베데레의 아폴로는 희랍 고전기의 이상적인 미의 기준이 적용된 인체 비례를 보여준다. 예컨대 비너스상의 머리에서 배꼽까지가 전체 신장의 0.382, 배꼽에서 발끝까지가 0.618에 이르는 비율인데, 이는 아폴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고대 희랍의 이러한 미의 이상 혹은 비례가 유일한 미의 가치 기준인가. 그것은 보편타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 기준이 민족이나 지역,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런 가정 아래 ‘미의 역사(Storia della belezza)’란 책을 썼다. 그는 서양의 고대를 비롯하여 중세, 르네상스, 근대,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미의 전형을 통해 미의 변용 양상에 주목했다. 그가 예시한 폭넓은 미의 스펙트럼은 미의 반대 개념에 해당하는 추(醜)마저도 포괄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인식 주체가 만들어내는 주관적인 것인가. 결론은 ‘그렇다’이다. 미의 상대성이 이를 말해준다. 가령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목이 길수록 미인으로 간주해서 심지어 30cm나 되는 긴 목을 가진 여성이 있다. 또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 앞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부인이 죽어 슬픈 사람의 눈에는 그 풍경이 아름답게 보일 리 만무하다.

이러한 예들은 미학적으로 말하면 미적 향수 혹은 미적 판단과 관련된다. 칸트는 저서 ‘판단력비판’을 통해 인간이 미를 판정하는 능력, 즉 취미 판단을 다룬 바 있다. 그것은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고 했을 때, 그 판단이 보편타당한 근거를 어떻게 지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는 “취미 판단은 미적이다”라면서 취미 판단은 ‘쾌 혹은 불쾌의 감정’에 관련되며,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구상력이라고 봤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호남대 교수
윤진섭 미술평론가 호남대 교수
여기서 중요한 것이 칸트가 말한 무관심성의 개념이다. 즉 어떤 대상이 아름다운가 아닌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감각적인 욕구에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나오는 그림의 떡(畵中之餠)처럼, 그림을 보면서 그림 속에 들어 있는 떡을 보고 군침을 흘리면 제대로 된 감상은 어렵다. 이때 실제적인 욕구를 억누르고 대상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 대상을 가리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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