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연극무대 ‘오이디푸스왕-맥베스’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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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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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 ‘칼로 막베스’는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를 경쾌하고 통속적인 무협활극으로 풀어내 고전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올 초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 ‘칼로 막베스’는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를 경쾌하고 통속적인 무협활극으로 풀어내 고전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2500년 전 쓰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400년 전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 바람이 국내 연극계에 거세게 불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올 초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를 시작으로 극단 골목길, 극단 죽도록달린다, 극단 떼아트르봄날이 잇달아 선보인 두 작품까지 벌써 다섯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11월엔 국립극단 ‘오이디푸스’의 앙코르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맥베스 바람은 지난해 불기 시작해 지금까지 10편 가까이 무대화됐다. 특히 극단 초인은 쿠데타를 일으킨 폭군에 대한 정치극으로서 ‘맥베스’를 지난해 무대화한 데 이어 운명에 굴하지 않고 꿈을 좇는 고독한 개인을 그린 ‘독고다이 원맨쇼 맥베스’를 공연 중이다. 유독 두 고전 작품의 공연이 최근 급증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 한국의 정치 현실을 반영한 거울

연극은 필연적으로 ‘사회 현실의 거울’로 작용한다. 연극인들은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정치적 혼돈에 주목한다. 현재는 ‘권력의 흥망성쇠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평론가 조만수) ‘권력의 격변기’(평론가 이경미)이며, 두 작품이 그런 현실을 직간접으로 반영하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인간 중 가장 지혜로운 자로 최고 권좌에 올랐다가 패륜의 화신으로 몰려 처절하게 몰락하는 오이디푸스는 현기증 나도록 급속한 정치권력의 성쇠를 반영한다. 스코틀랜드 최고의 영웅이었지만 충성을 맹세한 왕을 시해하고 권좌를 찬탈했다가 스스로 파멸하는 맥베스는 정치권력의 치명적 위험성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 국내 정치 현실을 구체적으로 암시하는 듯한 장면도 있다. 한태숙 씨가 연출한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는 원작과 달리 가파른 절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최고권좌에 앉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극적 장치다. 올해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극단 마방진의 ‘칼로 막베스’는 원작을 한국적 조직폭력 문화의 화법으로 번안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을 풍자했다.

○ 다양한 변주 가능한 ‘열린’ 텍스트

지난해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국립극단이 올 초 창단공연으로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린 ‘오이디푸스’는 이후 국내 연극계에 일으킨 오이디푸스 열풍의 신호탄이 됐다. 국립극단 제공
지난해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국립극단이 올 초 창단공연으로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린 ‘오이디푸스’는 이후 국내 연극계에 일으킨 오이디푸스 열풍의 신호탄이 됐다. 국립극단 제공
두 고전이 작가와 연출가가 자신만의 관점 및 스타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열린 텍스트라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오이디푸스는 인류 공동의 문화 자산인 희랍 비극의 대표작으로, 인간의 원초성을 건드리는 가장 강력한 드라마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비극 가운데 가장 짧으면서도 강렬해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가 신이 정해놓은 운명에 묶인 존재인 동시에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그에 항거하는 실존적 저항의식을 함께 보여줘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맥베스’는 개인의 어두운 내면세계를 심도 있게 다룬 심리극으로도 읽힌다.

골목길의 박근형 대표가 연출한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농축시킨 단단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공연 중인 극단 떼아뜨르봄날의 ‘낭만비극 오이디푸스’는 운명이라는 부분을 배제하고 남녀 주인공인 오이디푸스와 요카스타의 인간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극단 초인의 박정의 연출이 지난해 ‘맥베스’에선 정치적 야욕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부도덕한 폭군으로 맥베스를 그린 반면 올해 ‘독고다이 원맨쇼 맥베스’에선 무명배우의 개인적 흠모를 받는 영웅으로 묘사한 것도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희단거리패가 영국의 젊은 연출가 알렉산더 젤딘을 초청해 2월 무대에 선보인 맥베스는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신봉하는 현대 중산층 부부의 비극을 그려냈다.

○ 중극장에 올릴 만한 창작극 적어


이들 고전이 ‘잘 팔리는’ 이유는 국내 연극계에 그만큼 다양한 시각을 담을 수 있는 창작극이 아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론가 김미도 씨는 “시대나 국가를 초월한 보편성에 현대적 해석 여지가 풍부한 고전을 대신할 창작극을 국내 연극계가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론가 이경미 씨는 연극평론 봄호에 쓴 ‘고전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라는 글에서 “형식과 내용을 불문하고 오늘날 무대와 객석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전’을 향해 목마른 시선을 보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라고 지적했다.

최근 중극장 규모의 극장이 많이 생긴 것도 고전을 무대에 올리는 시도에 커다란 동인(動因)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칼로 막베스’를 연출한 고선웅 씨는 “칼로 막베스는 원래 중극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소극장에 비해 중극장 무대가 깊으면서 높고 조명 장치도 더 좋기 때문에 비극적 무대 연출을 하기가 좋다”고 말했다. 평론가 조만수 씨도 “오이디푸스와 맥베스 모두 중량감이 있어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극장에서 공연하기 적합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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