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 귀환후 마주앉은 ‘공신’ 박병선 박사-박흥신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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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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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처음 발견 순간 그윽한 묵향에 소름”박흥신 “협상과정서 佛소유권 인정한적 없어”

19일 프랑스 파리 식당에 마주 앉은 박병선 박사(오른쪽)와 박흥신 주프랑스 한국대사.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19일 프랑스 파리 식당에 마주 앉은 박병선 박사(오른쪽)와 박흥신 주프랑스 한국대사.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도서관 창고에 파지로 있던 책 한 권을 사서가 들고 왔어요. 두세 장을 넘기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윽한 묵향이 밀려 왔어요….”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해 반환 운동에 불을 지핀 박병선 박사(83)가 19일 파리의 한 식당에서 박흥신 주프랑스 한국대사와 만났다. 박 대사는 잊혀져 왔던 반환 협상을 되살린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도서 1차분이 14일 한국으로 간 것의 감격을 얘기하면서 박 박사는 10년 넘게 도서관, 박물관 등을 뒤진 끝에 의궤를 만났던 순간의 기억을 되살렸다. 처음 의궤를 펼치던 순간 “수백 년이 지난 책에서 그윽한 묵향이 밀려 왔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시대라면 왕만 보는 그런 귀한 책 근처에 나 같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나 있었겠나”라며 “프랑스가 의궤를 잘 보관해 왔다고 하는데 이 말은 믿기 어렵다. 대장이나 도서목록 카드도 없이 방치했다가 한국의 중요한 문화재라는 걸 알고 난 뒤 신경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프랑스로 온 게 1955년이니 온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한 번도 조국을 잊어본 적이 없다”며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필요한 자료를 찾으러 동국대 역경원에 가려고 귀국했을 때 육영수 여사께서 직접 학교로 연락을 해주셔서 세심하게 도와주신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전화를 주셔서 ‘아픈 데 없느냐, 감사하다’는 말을 하셨는데 내가 그런 말 들을 자격이 있나.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했다.

이에 박 대사는 “해외에 계시지만 박사님처럼 나라를 잊지 않은 분들 덕택에 우리 국민이 소중한 문화재를 되찾았다”고 치하했다. 박 대사는 의궤의 소유권과 관련해 “2015년 한·프랑스 문화교류 행사 때 서너 권 정도가 전시차 프랑스로 오겠지만 다시는 모두 프랑스로 돌아올 일이 없다”며 “협상 과정에서 도서의 소유권 문제는 아예 거론한 적이 없으며 프랑스의 소유권을 인정한 적도 없다. 우리가 갱신을 요구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지심경처럼 프랑스인이 정식으로 구입해 자기 나라로 가져간 뒤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문화재는 우리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박 박사는 “이참에 프랑스에 있는 우리 문화재 목록을 파악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그릇과 자기 수십 점도 본 적이 있다”며 “지금까지 반환 협상 대상에 언급조차 안 된 옥책문(옥에 왕비의 덕을 칭송한 글을 새긴 것)이나 고지도 등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4일에는 공항에 가 보고 싶었지만 괜히 부담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5월 말 마지막 도서가 갈 때는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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