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세시봉 바람타고 수제품 주문 밀려 들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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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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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텀 기타 만드는 김동진 씨

한국 기타 산업의 산증인인 김동진 전 깁슨코리아 지사장은 “이제야 제대로 된 국산 악기브랜드를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한국 기타 산업의 산증인인 김동진 전 깁슨코리아 지사장은 “이제야 제대로 된 국산 악기브랜드를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세시봉의 부활 때문인지 통기타를 찾는 손님이 부쩍 늘었어요. 그래도 1980년대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죠. 이제 70% 정도 회복했을까요?”

10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급 기타 브랜드 ‘깁슨(Gibson)’의 한국 지사장을 15년이나 역임한 김동진 씨(60)는 근래의 ‘통기타 붐’이 싫지 않다는 표정이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그의 수제 기타공방은 전국에서 밀려온 주문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기타’를 빼놓고 현대 대중음악의 발전을 얘기할 수 없다. 멜로디와 화음은 물론이고 저렴한 가격에 휴대성까지 뛰어나 가난한 뮤지션들의 표현력을 극대화했기 때문.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매년 1000만 대 이상의 브랜드 기타가 소비될 정도로 기타의 위상은 대단하다.

김동진 씨의 별명은 깁슨의 기타 브랜드에서 따온 ‘에피폰 킴’이었다. 20년 가까이 한국 기타 제조 산업에서 일한 그는 연간 100만 대 가까운 기타를 제조할 정도로 한국 기타산업의 실력자로 활약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기타산업은 전 세계 유통량의 40%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탁월한 제조경쟁력을 갖고 있었어요.”

그의 이력은 우리나라의 제조 산업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 전자공학도 출신으로 대기업 연구실에서 일하던 1986년, 국내 대표악기 기업인 콜트(Cort)악기로 이적하며 당시 급부상하던 악기산업에 투신한 것.

이후 그는 기타용 이퀄라이저 개발로 특허를 취득했는데 이를 눈여겨본 미국 깁슨이 그에게 한국지사장을 제안하며 인생이 뒤바뀐 것이다. 1990년대에는 주로 한국에서 깁슨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담당했고 2000년 이후는 중국 공장 설립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깁슨의 고향인 테네시 내슈빌은 한동안 출판과 악기 제조로 1위를 한 지역인데, 산업화를 경험한 한국이 그것을 고스란히 빼앗아 왔어요. 하지만 전통과 자본투자가 중요한 악기산업에서 한국은 결정적으로 독자 브랜드만은 흉내 내지 못하고 말았어요.”

실제 신중현 씨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표 뮤지션들 역시 해외 브랜드 악기로 연주를 해 왔고 그게 당연한 일로 여겼다. 결국 국산 브랜드들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브랜드(팬더, 깁슨, 마틴)에 밀렸고, 최근에는 제조기지 역시도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빼앗기며 국산 기타의 맥은 거의 끊긴 셈이 됐다.

“깁슨에서 은퇴하고 한국에서도 고급 수제기타(커스톰숍)가 가능한지를 실험 중입니다. 이미 고급 기타는 수백, 수천만 원씩 하는 고부가 제품인데 음악 강국이 되려면 좋은 악기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 우리도 세계적 악기 브랜드를 만들어 내겠죠.”

통기타 붐이 잦아든 1990년대 이후의 국내 기타 문화는 교회 음악을 바탕으로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고 최근에는 인디문화를 포함한 대중문화의 급성장으로 제2의 기타 붐을 맞이하게 됐다. 국내 기타시장은 여전히 통기타가 전자기타에 비해 8 대 2 정도로 우세하다고 한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모든 부모님이 아이에게 기타를 사 주며 ‘너 공부 소홀히 하면 기타 빼앗는다’는 조건을 내건다는 점이에요. 그 나이에 공부 중요한 것은 상식이지만 이제 음악을 뺀 인생을 강요하는 것도 무모하다고 봅니다. 기타만큼 쉽고 재밌는 악기가 또 어디 있을까요? 허허….”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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