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옥새가 경회루 연못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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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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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일 장편 ‘황제의 칼데라’ 장인정신의 의미 돌아보게 해

올 한 해 세상을 소란하게 했던 사건 중 ‘국새 파문’이 있었다. 전통기법을 전수받았다는 국새 장인의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된 사건이다. 이는 올곧은 장인정신이란 무엇이어야 할 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재독작가 강유일 씨(57·사진)의 새 장편소설 ‘황제의 칼데라’(문학동네)는 조선의 마지막 옥새 장인 우숭린과 그의 아들, 손자의 3대 이야기를 통해 장인정신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경복궁 대화재로 소실된 옥새를 장인 우숭린이 고종의 명으로 복원하는 데서 출발한다. 만들어진 옥새는 아무도 모르게 경회루 연못 속에 숨겨지고, 이 옥새가 20세기 말 발견되면서 우숭린 일가의 사연이 드러난다.

우숭린이 망명 중에 자결하고 그의 유복자 우현학이 6·25전쟁 중 종군기자로, 국무총리실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군사쿠데타로 인해 독일로 망명한다는 일가의 곡절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지난한 역사를 펼쳐 보인다. 강 씨는 “역사의 조난자인 황제 고종과 그의 전사들의 ‘좌초의 방식’과 ‘희망의 방식’에 대해 적고 싶었다. 황제의 전사였던 한 가문의 삼대에 걸친 망명과 객사, 그 처절하고 찬란한 좌초에 대해 보고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고종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다. 아버지 대원군과 부인 명성황후의 그늘에 가린 ‘무능하고 무기력한 군주’로 여겨졌던 그간의 평가와 달리 최근 학계에서는 고종의 긍정적인 면모를 주목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고종이 근대화와 개혁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인 군주였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고종이라는 인물을 “조선왕조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온 존재로 지불해낸 고독한 난파자”로 바라본다. 옥새 인문 중 임금을 가리키는 ‘대조선국주상지보(大朝鮮國主上之보)’를 ‘대조선국만세지보(大朝鮮國萬歲之보)’로 바꿨고, 일제의 강탈로부터 이 옥새를 지키고자 경회루 연못 속에 숨겨 놓았다는 상상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작가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진 존재로 고종을 묘사하는 한편, 장인 우숭린이 민족의 염원을 담아 옥새를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장인정신은 그 무엇보다 ‘염결(廉潔)함’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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