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고 예술성 소홀?… 빙렬 문양에 한옥 곡선美-천년古都에 현대 세련美더해 드라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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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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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갈 듯 경쾌한 지붕의 곡선’, ‘진취적 기상을 강조한 역동적 형태’…. 경주예술의전당은 구태의연한 수식을 그대로 품으면서 구태의연함을 극복해낸 건물이다. “눈에 확 띄는 모양새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평범한 의도가 성실한 디자인을 만나 특별한 결과물을 내놓은 경우다. 사진 제공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날아갈 듯 경쾌한 지붕의 곡선’, ‘진취적 기상을 강조한 역동적 형태’…. 경주예술의전당은 구태의연한 수식을 그대로 품으면서 구태의연함을 극복해낸 건물이다. “눈에 확 띄는 모양새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평범한 의도가 성실한 디자인을 만나 특별한 결과물을 내놓은 경우다. 사진 제공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지난달 문을 연 경북 경주시 황성공원 내 경주예술의전당은 태생부터 두 가지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 건물이다.

우선은 독특한 외관이다. 요즘 건축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독특한 외형적 특성을 강조한 건물이라면 일단 ‘촌스럽게’ 여기고 보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대형 건축설계사무소. 일부 베테랑 건축가들은 소규모 도제식이 아닌 기업형으로 운영되는 이른바 ‘대형 건축설계사무소’를 예술적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시장성만 추구하는 골칫덩이로 마뜩잖게 여긴다.

경주예술의전당은 전면에 드러난 공간의 형태와 외벽 표피의 디자인에 성덕대왕신종과 도자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은근한 곡면과 촘촘히 갈라진 빙렬(氷裂) 문양을 그대로 새겨낸 건물이다. 설계는 국내 굴지의 대형 건축설계사무소 중 하나인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지방자치단체인 경주시가 발주하고 대기업인 삼성중공업이 시공했으니 건축의 문화적 가치를 중시하는 시각에서 보면 ‘미운 털’ 박을 선입견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셈이다.

소전시실 내부. 나선 계단을 오르며 의외의 감흥을 얻을 수 있다.
소전시실 내부. 나선 계단을 오르며 의외의 감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사진으로만 봐도 한 번쯤 찾아가 보고 싶은 매력을 풍긴다. 설계 주무를 담당한 이봉희 삼우 설계3본부 소장은 “요령 부리지 않고 정석대로 밀어붙여 집요하게 추구한 설계와 시공의 기본적 완성도 덕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독특한 모양새는 그저 ‘일단 눈에 띄고 보자’는 식으로 무턱대고 상상한 것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지역과 건물 용도의 특성을 고려해 과장 없이 말끔하게 다듬어낸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한옥의 처마나 고분 등 전통 문화유산에서 나타나는 부드러운 선의 차분한 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한편 그 흐름을 아기자기한 내부 동선과 유연하게 맞물리도록 구성했다. 형태를 공간과 상응하게 해 디자인의 개연성을 갖춘 것이다.

전면에 드러난 백자 모양 매스의 내부는 나선 계단을 타고 오르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소전시실이다. 천창(天窓)을 통해 들어온 빛이 1층까지 흘러내리며 방문자가 외부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드라마틱한 감흥을 안겨준다.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경주 시내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다.

건물 전면으로 외벽 일부가 돌출한 소전시 실은 성덕대왕신종과 백자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가져왔다.
건물 전면으로 외벽 일부가 돌출한 소전시 실은 성덕대왕신종과 백자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가져왔다.
파쇄 모자이크 타일로 마감한 빙렬 문양과 유연하게 둥글린 지붕 선은 마감 솜씨가 서툴렀다면 모티브 원형의 외양을 그대로 복사한 무성의한 디자인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푸르스름한 나선 계단과 백색 난간의 섬세한 배색은 시공자가 이 건물을 얼마나 꼼꼼히 마무리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건축면적 6212m²에 지하 2층, 지상 5층의 규모. 1층에는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홀을 갖추고 땅속으로 들어가 앉는 듯한 느낌을 주는 600석 규모의 실외 소극장을 별도로 만들었다. 경주에 산재한 왕릉의 곡선을 빼닮은 소극장의 무대 지붕은 촌스럽기는커녕 주변 경관에 현대적 세련미를 더한다. 경주예술의전당은 ‘전통미와 현대성의 조화’라는 고리타분해 보이는 콘셉트가 성실한 디자인과 꼼꼼한 만듦새를 만났을 때 어떤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지 증명하는 건물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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