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단골 서점마저… 향토 문화가 문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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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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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폐업한 부산 남포동 문우당서점. 16일 찾은 이곳은 썰렁한 가운데 도서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지난달 31일 폐업한 부산 남포동 문우당서점. 16일 찾은 이곳은 썰렁한 가운데 도서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23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주최로 ‘2010 서점포럼’이 열린다.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올해는 포럼을 앞두고 서점계에 비장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전국 주요 도시의 중형서점들이 줄지어 문을 닫는 현상이 최근 두드러지는 가운데 열리는 포럼이기 때문이다. 포럼에선 ‘서점의 미래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오프라인 서점의 생존 전략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포럼의 주제에서 보듯 최근 출판시장의 핫이슈는 전국 중형서점의 잇따른 폐업이다. 각각 30년, 55년 역사의 부산 동보서적과 문우당서점이 지난달 폐업한 소식이 특히 큰 충격을 던졌다. 이어 200평 규모의 충북 청주시 성안길문고가 폐업을 공지했고 이달 말까지 반품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신원문고 방화점은 14일 영업을 중단했다. 이른바 ‘향토서점’으로 불리던 지역의 중형서점들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줄이어 폐업하고 있는 것이다.

중형서점들의 잇따른 폐업은 그동안 진행돼 왔던 소형서점들의 몰락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형서점들의 협의체인 한국서적경영인협의회 최낙범 이사는 “작년까지는 부실한 곳들이 어쩔 수 없이 폐업했지만 최근에는 어느 정도 유지를 해오던 곳들이 스스로 문을 닫고 있다”면서 “더 버티기 힘들 것으로 보고 포기하는 형국”이라고 짚었다.

여러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 오프라인 서점의 약세는 두드러진다. ‘200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시점 직전 3개월 동안 한국 성인의 오프라인 서점 방문 빈도는 1.7회였고, 한 번도 서점을 방문하지 않은 비율은 50.8%였다. 반면 온라인 서점을 통해 도서를 구입한다는 비율은 성인 29.9%, 학생 44.4%로 나타났다. 한국출판학회가 2009년 발표한 ‘국제출판유통지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온라인 서점 비중은 23.7%로 조사 대상국 17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올 하반기 들어 특히 중형서점의 폐업이 잇따르는 것은 도서정가제의 여파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최 이사는 “7월에 정부가 도서정가제를 정비하면서 신간 할인율을 당초 예상했던 10%가 아니라 마일리지 적립을 포함해 19%로 허용함에 따라 많은 서점인의 희망이 무너졌다”고 전했다. 온라인 서점의 할인율이 10%만 돼도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오프라인 서점들이 급속히 비관으로 돌아섰다는 얘기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대형 온라인 서점들처럼 19%까지 할인할 여력이 없다. 구간의 경우에도 온라인 서점들은 출판사로부터 대량 구매를 무기로 싸게 책을 넘겨받아 50%가 넘는 할인 판매도 하고 있지만 지역 서점들의 할인율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들이 전국적으로 ‘당일배송’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어 소비자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이점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역 중형서점들의 폐업은 단순히 책방이 문을 닫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수십 년 동안 지역 주민들과 호흡하며 지역의 독서 문화를 이끌어왔고 저자 강연회, 전시회 등을 통해 지역 문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서점포럼에서 발표하는 충북 충주시 ‘책이 있는 글터’의 이연호 대표는 미리 낸 발표문에서 “완전한 의미의 도서정가제 확립을 요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서점의 앞날과 미래는 설계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서점의 문화적 산업적 사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전·폐업이 발생하는 서점 고사 시대를 맞아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대책 마련 및 중장기적인 서점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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