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미학… 죽음이 있기에 삶은 경건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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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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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죽음 문화/이옥순 심혁주 외 지음/340쪽/1만5000원/소나무

세상 모든 종교는 어떤 식으로든 죽음에 대해 언급한다. 동서양의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도 ‘삶과 죽음은 하나’라거나 ‘죽음은 삶의 조건’이라며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해 말해 왔다. 낮과 밤이 있듯 삶이 있으니 죽음이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죽음은 대부분 깊은 슬픔을 동반하며 지역마다 고유의 문화를 형성해 왔다.

여섯 명의 저자가 인도·티베트·중국 서남방 소수민족·몽골·중국·한국의 죽음 문화를 각각 나눠 소개했다. 죽음을 마주하는 태도는 문화권마다 달랐지만 죽음을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되돌아보고 선을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는다는 점은 공통됐다.

인도인은 몸은 죽지만 영혼은 죽지 않으며, 죽음은 곧 육신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은 곧 다른 육신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여긴 것이다. 인도인은 현생에서 자신이 쌓은 카르마(업)에 따라 재탄생을 결정한다는 믿음, 환생을 되풀이하다 보면 진리를 깨닫고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 덕분에 죽음을 희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책은 늘 유서를 들고 다니는 티베트인의 죽음 문화의 근원을 예부터 전해오는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라는 경전에서 찾는다. 죽은 사람이 죽음과 재탄생 사이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을 묘사하며 생의 근본원리에 대해 논하는 이 경전은 죽음을 사후세계를 알려줄 뿐 아니라 현실의 삶을 더욱 사랑하고 경건하게 만든다. 티베트인들이 ‘명상’과 ‘독경’을 생활화하며 죽음 문화를 일상에 받아들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국 서남방 지역의 하니족과 이족, 나시족 등 소수민족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땅이나 하늘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영혼을 인도하거나 조상의 영혼이 자신들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유목 생활을 했던 몽골인은 자신이 태어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시신을 들판에 놓아두어 조류나 야수의 밥이 되게 했다. 동식물과 자연에 이로운 죽음이 곧 열린 죽음이라고 봤던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 중 하나인 ‘시경’에는 “인색하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에 즐기세,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네”란 노래가 실려 있어 중국인이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죽음에 항거하는 장생불사 추구로 이어지고 현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여겨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할 대상으로 여겼다. 생전에 수의를 준비하고 죽은 뒤 일처리 등에 대해 상의하는 일이 그렇다. 또한 한국의 상가는 악상이 아닌 호상의 경우, 축제 자리였다고 책은 전한다. 이는 염습부터 발인, 상(祥), 탈상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죽은 사람을 조상의 자리에 세워 죽음 이후에도 삶이 지속된다고 보는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책은 죽음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양상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저자들은 “죽음을 단지 ‘죽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직결된 삶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죽음의 무게가 다르게 보일 뿐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라며 “어찌 보면 죽음이 중요한 것은 삶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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