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아닌 그들’보다 추한, ‘인간 같지 않은 인간’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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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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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소설에 좀비-로봇-프랑켄슈타인 등 잇달아 등장… 왜?

“좀비들이 다르게 보였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이 세계로 불려나와 저렇게 살고 있다는 게, 아니 저렇게 지내고 있다는 게 안쓰러웠다.”

지난달 출간된 김중혁 씨(39)의 장편소설 ‘좀비들’에서는 살아 있는 시체인 ‘좀비’가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휴대전화 수신도 측정 기사인 주인공이 무통신지역 ‘고리오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던 중 좀비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 이 책에 대한 인터넷서점 독자서평란에는 “좀비라는 주제가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 진지한 의미를 갖게 됐다” “좀비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삶과 죽음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좀비’가 소재의 낯선 인상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다는 의미다. 이 작품은 4000부 이상 판매되면서 독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좀비, 로봇, 프랑켄슈타인…. 최근 작가들이 인간 아닌 존재를 잇달아 소설에 등장시키고 있다. 순수문학이 SF와 판타지 등 장르소설의 기법을 차용하게 된 경향과 맞물리는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 작품들의 실험은 문학의 시공간을 넓히고 소재를 다양화했다는 초보적 의의에서 벗어난다. 이들은 낯선 존재들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려 한다. 이때 ‘인간 아닌 대상’은 다름 아닌 왜곡된 인간상을 암시한다.

다르게 생긴 좀비들에게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김중혁 씨는 “소설에서 사람들은 좀비를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고 싶어 하지만 본능적으로는 그러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좀비’가 외국인 노동자로도, 소수 인종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여름 선보인 김영하 씨(42)의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서는 여행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여성이 로봇과 연애를 한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여성의 말을 들은 로봇은 ‘열정은 인간을 해칠 것’이라며 떠나버린다. 둘의 관계는 한순간에 ‘비인간적인’ 차가운 관계로 무화돼 버린다. 지난주 출간된 김희진 씨(34)의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에서 주인공 여성은 3층짜리 대저택에서 고양이 188마리와 사는데, 이 고양이들은 주인공 여성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변신한 것이다.

평론가 이광호 씨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를 다루는 것, 즉 어디까지가 인간인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경계를 질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상대의 모습이 강렬할수록 거기에 그 반대에 선 인간의 모습이 선명하게 투영되고, 그 상대를 괴물, 로봇 같은 극단적으로 인간과 전혀 닮지 않은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오히려 일그러진 추악한 인간상이 거울처럼 비친다”는 것이다.

지난달 출간된 최제훈 씨(37)의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은 초판 2500부가 한 달 만에 소진됐다. 신인 작가의 첫 창작집이 초판 자체가 소화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선전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는 시체를 이어붙인 괴물 프랑켄슈타인이 등장한다. 겉으로는 ‘프랑켄슈타인론’으로 부를 만한 이 작품은, 평론가 우찬제 씨에 따르면 “비인간적인 존재 자체를 파고드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다. 우 씨는 “인간이 부주의하게 놓치고 있거나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것을 괴물의 시선으로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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