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삼국유사 글쓰기 감각’ 고운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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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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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이 전국 누비며 삼국유사 썼듯…난 평생동안 그 책에 스토리 입힐 것

일연의 삼국유사를 ‘길 위의 책’이라고 평가하는 저자. 사진 제공 현암사
일연의 삼국유사를 ‘길 위의 책’이라고 평가하는 저자. 사진 제공 현암사
“삼국유사를 쓴 일연(1206∼1289)은 현장감각과 정치감각, 균형감각 등 세 가지 감각이 탁월한 역사가였습니다.”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49)의 신간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현암사)은 그가 평생의 작업으로 기획한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15권으로 예정된 시리즈는 삼국유사에 상상력을 덧붙여 독자들이 역사서에 쉽게 다가가도록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첫 권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에서는 삼국유사가 임진왜란 때 왜군의 전리품이 돼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최남선에 의해 새롭게 알려지는 과정을 담았다.

고 교수는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 문화 연구는 많은 데 비해 정작 텍스트로 연구한 경우는 드물다”며 삼국유사에 천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책은 일연의 글쓰기를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먼저 그는 “삼국유사는 ‘길 위의 책’”이라며 일연의 현장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김부식(1075∼1151)이 삼국사기에서 연대별 사건 서술에 주력한 반면 일연은 하찮은 현장이라도 직접 둘러보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백제 무왕이 창건한 미륵사에 대한 기록을 보더라도 삼국사기는 ‘무왕 35년에 완성되었다’고만 기록한 반면 삼국유사는 ‘미륵상 셋과 회전(會殿), 탑, 낭무(廊무·정전 아래에 동서로 붙여지은 건물)를 각기 세 군데 세운 다음 미륵사라는 편액을 달았다’고 절의 구조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일연은 이런 현장감각으로 지배층뿐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담아냈습니다. 봉건시대의 역사가가 민중의 생활사를 담은 역사서를 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죠.” 그도 일연처럼 책을 쓰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일연에 관해 남아 있는 문자 기록은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 남아 있는 비문(碑文)이 유일하다. 생몰연대와 주요 활동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일연이란 인물을 입체적, 복합적으로 알기 위한 자료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고 교수는 “일연의 고향인 경북 경산시 등 그의 행적을 따라가며 지리적 요소를 알아본 뒤 구비 전승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역사에 살을 붙여나갔다”고 설명했다.

일연은 정치적 감각도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고 교수는 “일연이 살았던 13세기는 몽골의 침략 등으로 백성들이 피폐한 삶을 살았다”며 “그는 공포의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에게 주는 ‘위안의 읽을거리’로 책을 썼다”고 평가했다. 일연은 삼국유사 곳곳에서 단군신화를 비롯한 이상적 정치의 모습을 그렸다. 고 교수는 일연이 ‘권력으로서의 정치’가 아닌, ‘권력에 맞선 창조적 삶의 지속으로서의 정치’를 그렸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균형 감각. 그는 “일연은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 불교와 민간신앙이 극심히 교차한 신라 사회를 바라보면서 경우에 따라 불교를 비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스토리텔링 기법은 빈약한 역사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사실을 왜곡시킬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국문학자입니다. 문화 콘텐츠 확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주어진 자료에만 얽매이면 고전의 재탄생이 어렵습니다. 역사의 왜곡은 곤란하지만 상상력의 발휘는 꼭 필요합니다.”

계획 중인 세 번째 책에서 그는 일연의 글쓰기 기술을 다룬다. 일연이 의상과 원효 등 두 사람을 대비해 인물묘사를 하는 점, 역대 왕에 대해서는 대표적인 업적이나 특징만을 골라 이야기하는 선택과 집중의 기술 등을 집중 분석할 예정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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