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경기침체의 유령, 뮤지컬 시장 덮쳤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02 03:00수정 2010-09-0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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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페라의 유령’ 대장정 마치는 설도윤 대표
11일 막을 내리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프로듀서인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는 “신종 인플루엔자, 천안함 사건, 월드컵 등 유난히 공연계 악재가 많았지만 단 한 차례도 공연이 취소되거나 중단되지 않았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 뮤지컬 시장 성장의 기폭제가 된 작품이다. 2001년부터 2년 7개월간 장기공연으로 유료객석 점유율 90%를 기록하며 24만 관객을 끌어 모은 이 작품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빅뱅’을 몰고 왔다. 이 작품은 지난해 9월 1년간 장기공연에 들어가면서 침체된 한국 뮤지컬 시장에 새로운 반환점을 마련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모았다.

그 ‘오페라의 유령’이 11일 1년간의 장정을 마친다. 일본 뮤지컬 제작사 ‘시키’의 ‘라이언 킹’을 빼면 국내 공연기획사로선 전인미답의 기록이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자체에서 보유한 단일 기간 공연 최다 관객 기록을 24만 명에서 33만 명으로 갈아 치웠다. ‘라이언 킹’이 세운 330회 공연 기록을 깨고 401회 공연 기록을 세웠고 최다 매출(270억 원)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제작한 설앤컴퍼니(설컴) 설도윤 대표의 표정은 어두웠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설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많은 공연을 올려 왔지만 시원섭섭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처음”이라며 “앞으로 장기공연엔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하반기까지는 자체 작품 제작을 중단하고 제작대행에만 주력하겠다는 말도 했다. 29일 개막할 ‘브로드웨이 42번가’(CJ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와 내년 상반기 공연을 준비 중인 창작뮤지컬 ‘천사의 눈물’(코아콘텐츠미디어와 공동 제작)을 제외한 자체 제작을 중단하겠다는 설명이다.

“바닥을 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잖아요. 한국 뮤지컬 시장은 바닥을 뚫고 지하실을 지나 탄광까지 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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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뮤지컬산업의 희망 전도사가 ‘미스터 둠’으로 변신한 셈이다. 과당경쟁 때문에 국내 뮤지컬 시장이 블루오션에서 레드오션으로 바뀌었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뮤지컬산업의 복음을 전파하던 그의 입에서 이런 ‘묵시록’까지 흘러나오도록 한 요인은 무엇일까.

설 대표는 ‘기록의 사나이’로 통한다. 공연계 신기록을 많이 세우기도 했지만 뮤지컬산업 전반에 대한 수치와 정보에 정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페라의 유령’이 양산한 수많은 기록도 그의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한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오페라의 유령’은 초연 때보다 유료 객석 점유율이 90%에서 70%로 떨어졌고 매출도 예상 목표 310억 원에 비해 40억 원이 줄었다. 공연기간은 5개월이나 늘었는데 수익은 10억 원으로 8년 전과 같다.

“국내 관객의 성향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장기공연의 경우 예매 때부터 관객이 확 몰렸다가 후반부에 다시 몰리면서 U자나 V자 곡선을 그렸는데 요즘은 그 절반도 안 되는 지점에서 시작해 지지부진한 평행선을 그리는 모습입니다.”

그가 현재 뮤지컬 시장의 위기를 장기적인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뮤지컬 관객의 주 고객인 중산층의 위기와 맞물린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그건 대기업과 수출업체 이야기일 뿐입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중산층 위기는 계속될 것이고 뮤지컬 시장의 불황도 장기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브로드웨이 등 해외 뮤지컬시장은 불경기 가운데에도 호황을 누리고 있지 않느냐고 하자 “브로드웨이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이 주도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철저히 내수중심인 한국 시장과 다르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뮤지컬 제작사가 자금난 타개를 위해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제작편수를 남발하는 상황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10여 개 메이저 뮤지컬 제작사가 한해 60∼70회 공연을 올리다 보니 제작사도 관객도 작품 귀한 줄 모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은 밥상을 받다 아예 밥맛까지 떨어지는 셈이죠. 메이저 제작사라면 1년에 대극장 작품 1편, 소극장 작품 1편 정도로 스스로 제작편수를 제한해야 합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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