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역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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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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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영광 법성포서 민속조사… 10년 뒤 변화상도 추적

《“굴비는 아홉 번 죽지요. 그물에 걸려 죽고, 냉동되어 얼어 죽고,
굴비가 되기 위해 소금에 절어 죽고, 끈으로 엮을 때 졸려 죽고, 건조할 때 말라 죽고…
마지막으로 냉동실에 다시 들어가 또 죽고…. 참으로 험난한 여정이지요.”
폭염이 쏟아지던 22일 오후 전남 영광군 법성포.
국립민속박물관의 법성포 굴비 민속문화 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굴비는 아홉 번 죽는다” “굴비 한 마리가 26명을 먹여 살린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법성포 굴비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민속문화와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림은 박수근의1962년작 ‘굴비’.동아일보 자료 사진
“굴비는 아홉 번 죽는다” “굴비 한 마리가 26명을 먹여 살린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법성포 굴비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민속문화와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림은 박수근의1962년작 ‘굴비’.동아일보 자료 사진
법성포 발해굴비유통의 한유경 대표가 국립민속박물관의 오창현, 편성철 연구원에게 굴비에 대한 설명을 풀어놓았다. 한 대표가 벽에 걸린 굴비를 가리켰다. 설명은 문학적 철학적 차원으로 이어졌다.

“저기 매달려 있는 굴비를 보세요. 모두 표정이 다르지요. 어떤 건 절규하는 듯하고 어떤 건 체념한 듯하고….”

굴비의 민속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현장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연구원 사진작가 등 10여 명은 2월부터 7개월째 법성포에 머물며 굴비에 얽힌 다양한 민속문화를 조사하고 있다. 2011년 ‘전남민속문화의 해’를 앞두고 이뤄지는 전남지역 민속문화 현지조사의 일환이기도 하다.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이 굴비다. 법성포 굴비는 법성포에서 말린 것으로, 고려시대 이래 최고 명품으로 꼽혀왔다. 민속박물관이 조사하고 있는 현장은 법성포의 법성리와 진내리. 두 마을의 1년 굴비 출하량은 2만5000t, 1년 매출액은 약 4000억 원이다. 법성포 지역의 굴비상가는 480여 곳. 국내 전체 굴비 거래량의 60% 이상이 영광 굴비이고 또 그중 80% 이상이 법성포 굴비다.

○ 전통 가공과정-종사자 애환 등 담아

연구원들은 그동안 매일 집집을 돌면서 굴비의 민속문화를 조사했다. 오 연구원은 “어선을 타고 나가 조기를 잡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이들은 한 가구를 정해 굴비 가공도구 등 집안의 물건을 하나하나 샅샅이 조사하고 촬영한다.

왜 법성포일까. 편 연구원은 “굴비는 바람과 소금, 사람 손길의 절묘한 만남”이라고 전했다. 기온 습도 풍속 등이 굴비 말리기에 최적이라는 말이다.

강행원 영광굴비특품사업단장의 설명. “밀물이 들 때 하늬바람(북서풍)이 불어오고 썰물이 빠질 때 남동풍이 밀려옵니다. 이 바람들은 대덕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에 부딪혀 돌아 나오는데 이때 소금의 염도가 적당히 어우러지면서 법성포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굴비 맛을 내는 것이지요.”

1년 이상 간수가 빠진 천일염으로 염장하는 전통 기법도 중요하다. 편 연구원은 “천혜의 자연조건에다 전통 가공방식을 계승하고 있어 지금도 법성포 굴비의 명성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연구결과 내년에 책으로… 전시회도

전남 영광군 법성포에서 굴비 민속문화를 조사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오창현(왼쪽), 편성철 연구원(가운데). 사진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전남 영광군 법성포에서 굴비 민속문화를 조사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오창현(왼쪽), 편성철 연구원(가운데). 사진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10월까지 법성포 조사를 마친 뒤 정리작업에 들어간다. 이어 내년엔 굴비의 전통 가공과정과 전승, 유통, 굴비에 얽힌 다양한 민속, 법성포 사람들의 굴비 인생 등 민속적 문화적 산업적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굴비 특별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생선 한 종류를 테마로 한 국내 최초의 전시가 된다. 보고서와 책도 함께 출간한다. 법성포에 동행한 민속박물관의 천진기 민속연구과장은 “법성포 굴비의 민속문화를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한국인의 음식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면서 “10년 뒤엔 법성포를 다시 조사해 굴비 민속문화의 변화상을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추석까지의 기간이 법성포에서 가장 바쁜 시간. 명절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법성포 사람들은 즐겁다. 한 대표의 설명이 계속됐다.

“굴비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26명이 먹고살 수 있다고 하네요. 조기 잡는 사람부터 말리는 사람, 굴비를 엮는 줄 만드는 사람, 굴비를 엮는 엮거리 아줌마 등등. 죽어서도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생선이 바로 굴비인 셈입니다.”

영광=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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