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덮은 한지, 東西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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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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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 1세대 정창섭 씨
과천현대미술관서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창섭’전은 한국 전통의 종이와 미감을 접목한 추상미술 작가의 화업 60년을 조망하는 자리다. 과천=고미석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창섭’전은 한국 전통의 종이와 미감을 접목한 추상미술 작가의 화업 60년을 조망하는 자리다. 과천=고미석 기자
광복 후 한국에서 교육받은 한국추상미술의 1세대 작가인 정창섭 씨(83). 그의 작품은 ‘그리지 않는 그림’으로 불린다. 1970년대 중반,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인 한지를 발견한 작가는 이후 물감을 버리고 손으로 닥을 비비고 주물러 캔버스에 펴 바르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 처음엔 물기를 머금은 닥 반죽을 손으로 캔버스에 조심스럽게 발랐지만 후기로 갈수록 손과 닥의 교감은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은 한옥의 창호지 같은 은은한 느낌이 살아 있는 그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아 정창섭전을 마련했다. 현재 노환으로 투병 중인 화가는 서울대 미대 1회 졸업생으로 1953년 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하며 화단에 나왔다. 이번 회고전은 앵포르멜과 모노크롬을 실험한 시기를 거쳐 닥종이를 사용한 독창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67점을 통해 평생 축적한 예술가의 곳간을 꼼꼼하게 되짚는 자리다.

‘시대를 모색하다’ ‘종이를 만나다’ ‘침묵으로 잠기다’ 등으로 구성된 전시는 한국적 추상회화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특히 대표작 ‘닥’과 ‘묵고’ 연작은 한국의 미감과 서구 추상의 정신을 접목해 ‘말없이 말하는 경지’를 일깨운다. 화가인 ‘나’와 재료인 ‘종이’가 합일을 이루듯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정신과 물질 등도 둘이 아님을 작품으로 보여준 작업이다.

엄격한 사각의 캔버스 안에 스며 차분히 가라앉은 색감의 작품들. 이들은 하나의 작품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고요한 침묵의 울림을 선사한다. 억지로 꾸며내지도,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 작품들이 예술의 깊이와 기품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한다. 전시는 10월 17일까지 제2전시실. 1500∼3000원. 02-2188-6000

과천=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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