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비극의 시대 나뒹구는 희극적 인생 3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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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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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가제 독고다이/김별아 지음/364쪽·1만2000원/해냄

일제시대,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의 이야기. 그렇다고 염상섭 ‘삼대’의 아들 덕기처럼 시대의 비극에 짓눌린 사내가 아니다. ‘가미가제 독고다이’의 아들 하윤식은 주색에 아버지 돈을 써대는 것 말고는 딱히 재주가 없는 시시껄렁한 청년이다. 김별아 씨(41)는 이 개념 없는 청년이 어떻게 메아리 없는 짝사랑에 빠졌는지를 맛깔스럽게 보여준다. 나라야 어찌되든 말든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만 궁리하던 철없는 아들. 그가 반한 상대가 하필이면 독립운동하는 여성이다. 이 사랑의 비극을 작가는 명랑하게 풀어간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주인공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구성진 개인사를 가졌다. 백정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피라면 벌벌 떠는 할아버지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할머니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고 나서야 가업을 잇는다. 호락호락하지 않던 여자를 얻게 된 감격과 사랑하는 이를 책임지겠다는 결심으로 힘주어 소 잡는 칼을 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숙연하다. 할머니의 사연도 기막히다. 내로라하는 미모로 뭇 사내들을 홀렸지만 양반집 자제들에게 겁간을 당하고 버려진 할머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잡은 사내가 할아버지다.

“‘가미가제 독고다이’를 통해 시대의 비극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의 층위를 짚어보고 싶었다”는 소설가 김별아 씨. 사진 제공 해냄출판사
“‘가미가제 독고다이’를 통해 시대의 비극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의 층위를 짚어보고 싶었다”는 소설가 김별아 씨. 사진 제공 해냄출판사
“삼천만 중 단 한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식민지 상황을 비장하고 엄숙하지 않게 그릴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 비극 속에서 가장 희극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할아버지의 아들이 그렇고 그 아들의 아들이 그렇다. 백정 할아버지의 아들 훕시는 온갖 고생을 마다 않고 돈을 모아서 신분 세탁에 나선다. 족보를 사 하계운으로 이름을 바꾸고 독립운동가인 양반의 딸을 힘겹게 꼬드겨 결혼한다. 작업하던 여자가 노비 집안인 걸 알고 뻥 차버리는 장면에서 실소가 나오다 우아한 신식 양반 흉내를 내면서 사는 가정의 풍경에 이르면 기어이 웃음이 터진다. 아버지가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어머니는 기어이 피아노 연주에 노래까지 부르고 일요일 저녁이면 온 가족이 모여서 재미가 없어도 꼬박 두 시간씩 트럼프 놀이를 해야 한다. 어머니는 때를 지난 교양 잡지가 다락 가득 쌓여도 정기구독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코믹한 광경이 쓸쓸한 것은 사랑 없는 남녀의 억지 살림에 대한 안쓰러움보다는 책 속의 인물은 전혀 예감하지 못하는 다가올 시대의 광기를 독자들이 체감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인생 하나하나가 소설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아들 윤식의 러브스토리가 또 기구하다. 연모하는 여성이 하필이면 형의 연인 현옥이다. 작가는 윤식의 사랑을 두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성을 좋아하는 집안 내력으로 돌리면서 쓸쓸한 짝사랑의 행로에 시대의 그늘을 켜켜이 넣어둔다. 형이 몰두하는 지하 독립운동, 형과 현옥을 연결시켜 주겠다며 이상한 순정을 발휘해선 가미가제 특공대에 자원하는 윤식의 얘기가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란 시대에 맞춰서 살아지는 것만은 아니다”(김별아 씨). 그러나 이 삼 대의 이야기는 웃다가도 어쩐지 눈물겨워진다. 작가가 그려낸 희극적인 인물이 시대의 비극을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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