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듯 뽑아낸 살풀이춤 “몇겹이나 쌓인 恨 풀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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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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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창무극 대가 공옥진 씨 5년만에 무대

한국 전통춤의 대가 공옥진 씨가 27일 오후 5년여 만에 무대에 섰다. 건강이 나빠져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그는 이날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한국의 명인명무전’에서 20여 분 동안 살풀이춤과 ‘심청가’ 일부를 공연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국 전통춤의 대가 공옥진 씨가 27일 오후 5년여 만에 무대에 섰다. 건강이 나빠져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그는 이날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한국의 명인명무전’에서 20여 분 동안 살풀이춤과 ‘심청가’ 일부를 공연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죽지 않고 겨우 사는 그런 인생을 살아온 공옥진이, 교통사고에 풍 맞고 모진 목숨 죽지 않고 우리 귀한 분들 만나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겁니다.”

10여 분의 살풀이춤에 고단한 인생이 묻어났다. 한삼자락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다가 바닥에 쓰러질 때는 객석에서 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애간장 저미듯 손짓하다가도 금세 장단에 맞춰 치마를 감아올리고 흥겹게 어깨춤을 추는 가벼운 몸짓에서는 병색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살풀이춤에 이어 ‘심청가’ 중 심봉사 연기를 할 때는 한동안 소리를 하지 않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지만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지난 5년여간 공연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나빠진 건강 때문에 5분간만 설 것이라던 무대에 그는 20분이 넘도록 머물렀다.

1인 창무극, 해학춤 등 한국 전통춤의 대가 공옥진 씨(79)가 2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한국의 명인명무전’ 무대에 올랐다. 공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 씨는 “요즘 건강이 무척 좋아지고 있다. 밥도 먹고 죽도 먹고….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게 돼 말도 못하게 반갑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제 ‘무형문화재’의 ‘무’자만 들어도 아주 감사해요. 공옥진이 몇 겹이나 쌓인 한을 풀었어요. 죽어도 원이 없어요. 여러분 덕택입니다.”

한을 이야기하던 공 씨는 잠시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그런 그가 5년 만의 공연에서 살풀이춤을 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살풀이라는 것이 상대방의 아픔을 뽑아 몰고 가서 정화해주는 춤이에요.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춤이지.”

공 씨는 전남 영광군에 있는 전수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공연 수익금으로 장학금도 마련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예술은 둘째로 놔두고 인간부터 되어야 쓴다. 사람이 되지 못해가지고 예술을 한다는 건 가치가 없다”고 전했다. 무용계를 향해서도 “거짓으로 하지 말고, 혼이 담긴 춤을 춰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장에서도 서슴없이 바닥에 앉아 심봉사 역을 잠시 연기했다. “춤이라는 것은 오장육부에서 흔들어줘야 멋이 우러나지. 오장육부가 가만히 있는데 그냥 출 수는 없지”라고 말한 그대로였다. “외국 공연 가면 그 사람들은 다 요러고 (몸을 비틀고) 앉아 있어요. 그러고 공연을 한참 보다 보면 돌아앉아요. 시간이 지나면 또 더 가까이 돌아앉아요. 그러면 일어나라 그래서 손잡고 일어나서 춤 같이 춰요. 그것이 바로 ‘땡기는’ 힘, 예술의 힘이에요. 그런 게 좋아요.”

이날 공연에서도 공 씨가 말하는 ‘땡기는 힘’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살풀이춤과 ‘심청가’ 일부 장면을 공연한 뒤 그는 느닷없이 “구식으로 하지 말고 신식으로 해볼까요? 장구 좀 흥겹게 쳐봐”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장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를 불렀다. 객석을 메운 관객들은 금세 그를 따라 노래를 불렀다. 큰절로 무대를 마무리한 뒤 “죽지 않으면 또 오겠습니다”라고 흐느끼며 외치자 관객들 역시 일어나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이렇게 ‘타고난 광대’인 공 씨의 가장 큰 소원 역시 건강을 되찾아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여러분 나 잊지 마시오. 공옥진 잊지 마. 지켜주세요. 나 위해서 좀 빌어줘요. 빨리 나아서 옛날 공옥진의 그 1인 창무극, 2시간짜리 무대 좀 할 수 있게 빌어줘요.”

공 씨는 공연이 끝난 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공 씨의 1인 창무극 ‘심청가’가 올해 5월 전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데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동영상=5년만에 무대에 오른 공옥진 여사의 살풀이 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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