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927>曾子曰, 堂堂乎라 張也여 難與쎲爲仁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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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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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子張’의 제16장은 曾子가 子張을 논평한 말을 실었다. 앞서 15장에서 보았듯이 子游는 子張이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충실하고 결백한 행동을 실천하지만 그 행동이 지나치게 높기만 하고 誠實惻달(성실측달)의 뜻이 부족하므로 仁에 이르지 못했다고 논평했다. 여기서는 증자가, 자장은 용모가 장중하고 훌륭해서 남들이 보면 자만하는 듯이 보이므로 남들이 그와 더불어 서로 도와 인을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증자는 외관보다 내면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자장을 논평한 것이다.

堂堂乎張也는 주어와 술어를 도치해 감탄의 뜻을 강조한 어법이다. 堂堂은 용모의 훌륭함을 말한다. 難與병爲仁矣는 더불어서 함께 인을 행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병은 竝, 幷과 같은 글자다. 동일 글자의 異體字들이다. ‘논어’는 병의 字體를 사용한다.

‘子路’ 편에서 공자는 ‘剛毅木訥(강의목눌)이 近仁(근인)이니라’고 했다. 강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함이 인에 가깝다는 뜻이니, 剛毅木訥 자체가 바로 仁은 아니지만 仁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 剛은 의지가 강해 물욕에 휘둘리지 않는 것, 毅는 기가 강하고 과단성이 있는 것, 木은 나무처럼 질박한 것, 訥은 말수가 적은 것을 뜻한다. 남들이 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것이나 용모를 멋지게 지니는 것은 언어와 안색을 교묘하게 꾸미는 巧言令色(교언영색)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 행동과 용모의 내면에 至誠惻달(지성측달)의 誠意(성의)가 없다면 그것을 두고 결코 仁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정말로 공자와 그 제자들은 인간을 바라볼 때 행위의 순수한 동기를 강조하고 진심으로 남의 불행을 아파하는 측달의 감정을 중시한다. 윤리적인 주체는 결코 木石이 아니다. 고결한 품성과 풍부한 감정을 지닌 따스한 인간인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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