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인민 루니’ 정대세, 인터넷서도 파워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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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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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가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개설한 일본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 왼쪽부터 새로 발매된 게임 CD, 북한 축구 대표팀의 식사 사진, 직접 만든 게임 속 자신의 아바타 등에는 그의 자유분방한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0-7’

21일 남아공 월드컵 북한-포르투갈전이 끝나는 순간 전광판에 뜬 점수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 그라운드를 적시는 빗속에서 북한 대표팀의 에이스 정대세(26·가와사키)는 고개를 숙였다. ‘인민 루니’라는 별명처럼 당당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응원한 분들께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경기장을 떠났다.

앞서 16일 북한-브라질전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정대세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팀은 1-2로 분패했지만 정대세는 이번 월드컵 이후 유럽 진출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포르투갈에 대패하고 북한의 16강 진출이 좌절되면서 ‘북한의 박지성’이라는 정대세의 꿈도 그만큼 멀어졌다. 그래도 코트디부아르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남아 있다. 북한은 이제 한 경기만 치르고 돌아가야 하지만 더 큰 세상을 향한 ‘빅 월드’(Big World) 정대세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는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경북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서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축구 선수로서는 북한 대표팀에서 활동한다. 국적은 한국, 모국은 일본, 조국은 북한인 셈이다.

정대세는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니면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북한과 수교를 맺지 않은 일본에서 프로 선수로 활동하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일본인으로 귀화해야 했다. 그는 이충성(리 다다나리), 추성훈(아키야마 요시히로) 등 젊은 재일교포 선수들이 일본인으로 귀화해 편하게 활동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하지만 정대세에겐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편하다. 이 같은 성장 배경을 통해 정대세는 개방적인 ‘멜팅팟’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 강국 선수들과 얘기하고 싶어 배웠다며 유창한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등 자유분방한 개성을 마음껏 드러냈다.

강렬한 무늬가 돋보이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는 점도 독특하다. 북한에서는 종교가 금기사항이지만 정대세는 힙합 가수처럼 금속제 십자가 목걸이를 즐겨 착용한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려는 듯 노출 사진도 자주 공개한다. 자서전이나 자신의 블로그 대문 사진에도 근육질의 상반신을 드러낸 모습을 넣었다.

정대세는 지난달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 블로그를 개설해 팬들과 소통에 나섰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남아공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나 익살스러운 ‘셀카’를 올렸다. 일본 팬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자신의 이모티콘 ‘(`З´)/’도 즐겨 사용한다. 북한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한국’이란 국가명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정대세는 블로그에 ‘남조선’ 대신 ‘한국’(韓國)이라 적었다. 북한에선 ‘한국’이 금지된 표기이지만 블로그를 읽는 팬들을 고려해 일본 방식대로 쓰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 카메룬전에서 승리한 뒤 블로그에 “한국에 이어 아시아 2승째인가. 무척 기쁘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이 모든 게시물이 북한에선 징계 사유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도 팀의 간판스타인 그를 계속 붙잡기 위해 대우를 달리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대세의 블로그 제목은 자신의 이름 대세(大世)를 영어로 표현한 ‘빅 월드’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스몰 월드’이지만 북한 축구 선수 정대세는 이름처럼 ‘빅 월드’를 꿈꾸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 위 기사의 풀버전은 동아닷컴 오감만족 O₂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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