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홍콩…아시아 美의 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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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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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을 사지 않아도 감각을 챙겨올 수 있는 곳

《홍콩의 6월은 무덥고 습했다. 하지만 기후가 주는 수고로움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감동이 있었다. 당신이 트렌드 세터라면 올여름에도 홍콩에 가야 한다. 과거 홍콩의 쇼핑몰을 쥐 잡듯 뒤지던 기자는 이번엔 한층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트렌드 산책의 매력에 퐁당 빠졌다. 남들과 스타일이 똑같아질 물건을 생각 없이 사들이던 부끄러운 나날들이여, 안녕! 이왕 평생 소비하고 살 운명이라면 좀 더 독창적이고도 미학적인 안목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도시는 역동적 유기체다. 홍콩도 변한다. 홍콩의 안부를 잊고 산 사이, 낡았던 호텔은 매끈한 부티크 호텔로 거듭났다. 젊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은 꿈을 좇아 홍콩에 둥지를 틀었다. 상점은 갤러리 같고, 갤러리는 상점 같다. 영역의 장벽이 사라지는 크로스오버다.

이번 홍콩행의 테마는 ‘컨템포러리 홍콩’이다. 세계 각국의 핫한 트렌드가 아트와 스타일 속에 녹아든 신비로운 그 곳, 그대 이름은 홍콩….》

○ 주목받는 홍콩의 컨템포러리 아트


지난달 말 제 3회 홍콩 국제아트페어를 성황리에 연 홍콩은 어엿한 아시아 예술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와 영국 화이트 큐브 등 28개국에서 149곳의 메가급 갤러리들이 참가했고, 세계적 미술 컬렉터 5000여 명이 다녀갔다. 불과 보름 여 전 거대한 아트페어를 치른 홍콩의 갤러리들은 지금 어떤 아트를 주목하고 있나. 이달 중순 갤러리들이 밀집한 홍콩 섬 센트럴 지역의 소호와 셩완(上環) 일대를 둘러봤다.

소호에 있는 ‘신신’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예술품을 주로 취급하는 갤러리와 여성 옷을 파는 아틀리에를 함께 운영한다. 갤러리에선 ‘Reach for the HeART’란 이름의 이색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홍콩의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만성 노인병 환자들이 손수 그린 그림들이었다. 큐레이터 폴리 퀑 씨는 “환자들이 창조적 예술 활동을 통해 병마와 싸우는 고통을 줄이는 동시에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신은 이 전시의 자선기금을 모으기 위해 국제적 아티스트 31명의 작품도 함께 전시해 팔고 있다.

이 중엔 20만∼30만 홍콩 달러(약 3200만∼4800만 원)인 인도네시아 화가 주말디 알피 씨, 중국화가 안 누이 씨 등의 작품들이 있다. 프랑스 화가 에르베 모리 씨의 고양이 그림(20cm×20cm, 캔버스 위에 혼합재료)은 4500 홍콩 달러(72만 원)로 월급쟁이도 호기를 부리면 장만할 만한 작품이었다. 모리 씨는 프랑스 마르세유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평소 자신이 그린 동물 그림으로 집을 꾸미다가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홍콩의 갤러리들에서 작품을 통해 마주치는 아티스트 중엔 유독 호주 출신이 많았다. 홍콩 국제아트페어에 참여했던 셩완 지역의 캣스트리트 갤러리는 건축물 모티브의 추상화를 그리는 재스퍼 나이트 씨, 조각가 스테판 던롭 씨 등 호주의 여러 컨템포러리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홍콩은 호주를 서양과 동양으로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 사진은 현대 홍콩인의 소통 수단

캣스트리트 갤러리는 올 하반기 한국작가 데비 한 씨와 고상우 씨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비너스 얼굴과 한국 여성의 몸을 합성시킨 사진 작품에 매진하는 한 씨는 올해 초 소버린 아시아 작가상을 받았다. 소버린 예술재단이 아시아 작가들에게 주는 상으로, 한국계 작가가 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나온 32세의 재미작가인 고 씨는 필름을 반전 인화시켜 어두운 부분은 밝게, 밝은 부분은 어둡게 표현한다.

소호의 10 챈서리 레인 갤러리는 신진 사진작가 발굴에 특히 적극적이다. 현재는 홍콩에서 활동하는 영국 사진가 윌리엄 퍼니스 씨의 ‘엠페도클레스 눈 속의 불’이란 전시를 열고 있다. 퍼니스 씨는 밤 시간 홍콩의 스카이라인이 바닷물에 비치는 모습을 환상적인 네온 빛으로 찍는다. 만물의 근본을 흙, 공기, 불, 물로 봤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를 작품명에 끌어온 건 홍콩을 바라보는 그만의 방식이다. “나는 21세기 도심 현상을 찍는다. 홍콩의 야경은 도시 에너지의 전형이다”라는 그의 말은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을 반영한다.

이 갤러리는 광고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의 포토그래퍼 스탠리 웡 씨(필명은 anothermountainman), 회화와 사진을 결합해 호주에서 활동하는 존 영 씨 등 동시대 아티스트들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카티 드 틸리 관장은 “완성된 작품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미술 제작 태도인 개념 미술이 요즘 홍콩에서 각광 받고 있다”며 “시대의 오감이 용광로 속에 녹아든 홍콩은 아티스트들이 매력을 느끼는 소재”라고 말했다.

글·사진 홍콩=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세계 젊은 아티스트-디자이너들 둥지 틀어
갤러리는 상점 같고 상점은 갤러리가 되고


센트럴 필 스트리트에서 오랜 세월 우산을 만들어 온 노인, 홍콩의 젊은 거리 란콰이펑…. 셩완에 있는 ‘케네스렁 갤러리’란 사진 전문 갤러리의 유리문을 밀고 무작정 들어서게 된 건 어딘가 아마추어 느낌이 나는 흑백 사진들의 이끌림 때문이었다. 30대의 갤러리 주인에게 이 사진들을 누가 찍었느냐고 묻자 자신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전직 호텔리어였던 그는 사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어려서부터 가방 속에 카메라를 넣고 다니며 홍콩의 풍경과 사람들을 찍었다고 했다. 그가 니콘 FM2 카메라에 28mm 와이드 앵글 렌즈를 끼우고 일포드 델타 흑백 필름으로 찍은 사진 두 장을 골라 샀다.

우리는 아시아에 대한 대화로 공감대를 이루다 금세 친구가 됐다. 그는 말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인터넷 덕분에 많은 사람이 사진에 눈 뜨고 있죠. 사진이야말로 각 개인의 감성을 드러낼 수 있는 현대적 소통 수단 아닐까요.”

○ “이젠 생각하는 스타일의 시대”


홍콩의 대형 쇼핑몰들은 작정하고 돌아보려면 온종일 걸린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알렉산더 매퀸, 요즘 뜨는 알렉산더 왕 등 전설적이거나 또는 모던한 디자이너 옷들을 신속하게 훑어보려면 홍콩 최대의 멀티 브랜드숍 ‘I.T’를 권한다. 기자에겐 평소 두 곳의 쇼핑 아지트가 있다. 중국 전통 드레스인 치파오를 파는 ‘상하이 탕’과 남편처럼 듬직한 윙팁 옥스퍼드 구두를 파는 프라다그룹의 ‘처치스’다.

이번 홍콩행에선 보석처럼 빛나는 ‘신상’ 상점 두 곳을 새롭게 발견했다. 시간에 쫓기는 당신이 다른 곳은 다 포기하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3월 소호 스톤턴 스트리트에 문을 연 ‘포레스트 버드 부티크’와 카오룽 캔턴 로드의 고급 쇼핑몰 ‘1881 헤리티지’ 지하에 2월 문을 연 ‘브러더&시스터 콘셉트 스토어 앤드 카페’다.

포레스트 버드 부티크의 주인은 지난해 홍콩으로 이주한 독일 여성 건축가 울리케 폴 씨다. 그는 이곳을 손수 짓고 꾸민 후 에지 넘치는 옷과 액세서리,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제품과 화장품, 유기농 커피와 샌드위치 등을 한 공간 안에 모두 담았다. ‘스타일 시티’로 떠오른 베를린의 서클 컬처 갤러리와 손잡은 갤러리도 마련했다. 이 부티크 속 갤러리가 ‘도심 속 순수예술’이란 모토로 선보였던 개관전은 베를린 출신의 길거리 그래피티 아트 작가 ‘노마드’의 개념 미술이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왕립 예술학교를 나와 ‘휴고’의 아트 디렉터를 겸하는 브루노 피터스, 중국 상하이의 유명 액세서리 디자이너 매리 칭,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 전새나 씨 등의 옷은 꽤 감각적이다.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선 독일 함부르크의 ‘동키 프로덕츠’의 디자인이 특히 눈에 띈다. 각국 정상들의 얼굴을 그린 5개들이 티백, 권총 모양 비누, 옆면과 뒷면에 동물 코 모양을 그려 넣은 아이 컵 등 유머 감각이 물씬하다.

‘브러더&시스터 콘셉트 스토어 앤드 카페’는 홍콩 엠퍼러그룹이 운영한다. 보석상과 연예기획사, 홍콩의 유명 스타들로 늘 북적이는 란콰이펑의 ‘드래건-i’ 바 등을 거느린 기업이다. 이 기업 오너 2세인 길버트 영, 신디 영 남매는 그들의 코스모폴리탄 감각과 고급 안목으로 골라낸 희귀한 제품들을 선보인다. 렌즈 알이 하트 모양인 베이비 핑크색 ‘드래건-i’ 선글라스, 영국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아디다스와 협업한 스니커즈, 트렌디한 홍콩 시계 브랜드 ‘록 캔디’…. 곳곳에 베어 브릭(곰 모양 블록)이 놓인 펑키하고 세련된 이곳의 느낌은 컨템포러리 디자인 박물관이다. 홍콩의 트렌드세터들은 여기에서 라운지 음악에 맞춰 칵테일을 마시며 새로운 디자인을 소비한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홍콩에서 ‘럭셔리’는 더는 샤넬이나 루이뷔통이 아니다. 홍콩의 핫 스타일을 리드하는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자.

“교육을 많이 받아 야망 넘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젊은 아시아 여성들은 점점 더 정제된 럭셔리를 찾는다. 그들은 낡은 소비 관습을 버리고 모던한 여성성과 재정적 독립을 추구한다. 그들은 이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의할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울리케 폴 씨)

“스타일은 결국 얼마나 ‘콘셉트’를 가졌느냐의 문제다” (길버트 영 씨)

홍콩=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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