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아프리카]<3>5500km대장정 첫발… 하늘과 땅이 이렇게 높고 넓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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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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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이다. 20일간 남아공 나미비아 보츠와나를 거쳐 짐바브웨의 빅토리아폭포까지 이어질 장장 5500km의 오버랜드 트러킹이. 여행은 늘 사람을 설레게 한다.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 덕분이다. 그런데 이 여행만큼은 달랐다. 고백하건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매일 침대도 아닌 슬리핑백 속에서 잠자는 캠핑을, 그것도 16일(3일은 배낭여행자 숙소 숙박)씩이나, 다른 곳도 아닌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버스로 개조했다고는 하나 본디가 트럭인지라 애초부터 안락함이란 기대할 수 없는 화물차로 매일 평균 250km 비포장도로로 이동하고 식사 역시 토스트와 시리얼, 샌드위치에다 가끔 스테이크나 파스타로, 그나마도 캠핑장 야외에서 조리하는 간이식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그런 ‘헝그리 투어’인 만큼 내게는 얼마나 즐거울지를 가늠하며 갖는 기대보다는 과연 온전히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던 ‘도전’이었다. 여행치고는 좀 별난 여행이었다.

오전 8시 케이프타운 도심 쇼트마케트스트리트에 있는 노매드투어(오버랜드 트러킹 전문 여행사). 오버랜드 트러킹을 예약한 여행자가 속속 도착했다. 시내를 벗어난 트럭이 테이블베이 북방 돌핀비치에 섰다. 바다 건너 테이블마운틴(케이프타운의 배후 산)이 멋지게 조망되는 뷰 포인트다. 이곳은 ‘베이 사이드 몰’이라는 상가. 각자 맥주 음료수 와인 과일 얼음 등을 사서 차 안의 공용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이런 쇼핑은 매일 이동 도중 들르는 마을에서 수시로 이뤄졌다.

11시 12분. 드디어 장도에 올랐다. 일정 절반(열흘)까지는 계속 북상하는 루트다. 첫날 목적지는 시더버그의 작은 계곡인 시트루스달. N7(국도 7호선)을 따라 북진하는 루트다. N7은 나비미아와 국경을 이루는 오렌지 강변의 비울스드리프의 국경초소에서 다리를 통해 나미비아의 국도 1호선인 B1과 연결되는 아프리카 남부지역의 주요 도로다.

나미브사막에서도 사구사막으로 이름난 소수스플라이의 아침 풍경. 오렌지 강에 의해 운반돼 대륙 서쪽 대서양 연안에 쌓인 칼라하리 사막의 흙과 모래가 바람에 의해 실려와 해안으로부터 55km 떨어진 이곳에 이런 사구를 형성하는데 벌써 500만년 이상 계속되있다.
나미브사막에서도 사구사막으로 이름난 소수스플라이의 아침 풍경. 오렌지 강에 의해 운반돼 대륙 서쪽 대서양 연안에 쌓인 칼라하리 사막의 흙과 모래가 바람에 의해 실려와 해안으로부터 55km 떨어진 이곳에 이런 사구를 형성하는데 벌써 500만년 이상 계속되있다.
케이프타운을 벗어나자 아프리카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산악, 그걸 배경으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누렇게 변한 덤불 투성의 구릉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가끔 와이너리의 포도밭이 싱그러운 초록빛을 선사할 뿐이다. 광대한 아프리카의 자연이 낯설기는 해도 가슴 탁 트이는 풍광에 어느덧 불안감은 사라지고 마음도 편해졌다.

해발 1300m의 큰 고개를 넘자 시더버그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폭 20km의 이 산맥은 남북으로 50km나 이어지는데 N7은 그 광대한 계곡을 따라 놓였다. 세레스(케이프타운 북동방 170km) 근방에 이르자 올리펀츠 강 물줄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물과 더불어 초록빛 과실수로 뒤덮인 과수원도 줄지었다. 모두 오렌지 나무인데 탠저린 시트러스 등 여섯 가지나 된다.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대로 아프리카 대륙 최고의 과실 생산지. 과일주스 브랜드로 잘 알려진 ‘세레스’가 여기서 태어났다.

목적지 시트루스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50분. 오늘 밤 우리가 묵을 캠프사이트 게코는 N7과 올리펀츠 강 등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의 시트루스 과수원 한가운데 있었다. 캠프장 도착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텐트 설치. 이곳은 캠프장이 폭신한 잔디밭이었다. 늦은 점심식사에 한참을 휴식한 후 오후4시경 뒷산으로 부시워킹을 떠났다. 가이드는 부시맨을 닮은 스코키라는 30대 원주민 남성. 바위와 덤불로만 이뤄진 이 산을 다람쥐처럼 헤집고 다니는 그를 따라 바위산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동식물과 부시맨 종족에 대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오전 6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식사 후 서둘러 출발했다. 570km를 달려 나미비아와 국경인 오렌지 강까지 가야 해서다. 오전 내내 황무지 산악 아래 농장지대를 지났다. 정오에는 길가 나무그늘 아래에 트럭을 세우고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했다. 오렌지 강변 농장의 캠프사이트 ‘피들러 스크릭’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소형트럭을 몰고 가족단위 오버랜드 투어에 나선 유럽인으로 북적였다. 모두 부활절 휴가 중이었다.

여행 사흘째. 드디어 첫 국경 통과다. 국경이라고 해야 오렌지 강이 전부고 N7이 지나는 다리 양쪽에 두 나라의 출입국관리사무소 건물 서너 채가 있을 뿐. 총 든 군인이나 경찰도, 또 철망도 없다. 국경선의 출입국 신고는 비교적 간단했다. 우선 비올스드리프의 남아공 초소에서 출국신고를 하고 트럭에 올라 다리를 건넌 뒤 나미비아 초소에서 다시 입국신고를 하는 순서다.

중요한 것은 현장 입국심사가 가능한지다. 내가 택한 노매드 어드벤처의 오버랜드 트러킹 20일 코스로 방문하는 4개국(남아공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중에는 나미비아를 뺀 나머지 나라만 가능했다. 나는 케이프타운에서 입국사증을 미리 발급받았기 때문에 신고서만 쓰고 내밀면 됐다. 두 나라 통과에 걸린 시간은 모두 한 시간.

비울스드리프 국경마을을 떠나 나미브사막의 소수스플라이로 가는 도중 지난 베타니의 수퍼마켓에서 만난 이 마을 노인들. 19세기 식민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복장이 흥미롭다.
비울스드리프 국경마을을 떠나 나미브사막의 소수스플라이로 가는 도중 지난 베타니의 수퍼마켓에서 만난 이 마을 노인들. 19세기 식민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복장이 흥미롭다.
나미비아에서 첫 기착지는 피시리버 캐니언. 국경으로부터 180km 북쪽 황량한 사막의 산악지역 아이아이스에 있다. 협곡이라면 그랜드캐니언부터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 참에 아프리카 오지에, 그것도 이름조차 생소하다 보니 애초부터 이 협곡에는 별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랜드캐니언에 이은 세계 두 번째 규모(깊이 550m 폭 27km 길이 160km)라는 설명으로도 부족할 만큼 대단했다. 더 놀란 것은 절벽 가까이로 순환도로가 난 그랜드캐니언과 달리 보호방책 하나 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는 그 순수한 모습이었다. 역시 자연이란 인공이 가미되지 않아야 제멋이다.

피시리버 캐니언 조망대가 있는 곳은 호바스. 같은 이름의 캠프사이트는 거기서 10km 거리다. 호바스 캠프사이트는 사막의 황무지 평원에 우거진 숲 속에 자리 잡았다. 물론 이 숲은 지하수를 끌어올려 조성한 것. 숲 그늘이 얼마나 대단한 효용을 지녔는지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면 쉽게 알게 된다. 한낮 땡볕 아래서도 숲 그늘로만 몸을 피하면 파라다이스를 느낄 정도다. 그 호바스에는 그 숲 그늘 아래 풀(pool)까지 있었다. 한낮 아프리카 대륙의 열기를 식히기에 그만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즐거움을 나는 이날 밤 발견했다. 이곳은 오후 10시면 발전기를 끄고 소등하는데 지평선까지 어떤 불빛도 보이지 않는 이 해발 700m의 캠핑장에서 일행은 함께 걸어 나갔다.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모습이 온전히 보이는 곳까지. 은하수가 우유를 엎지른 듯하게 부옇게 밤하늘을 가로질렀고 쏟아질 듯 밤하늘을 메운 별들 사이로 때때로 별똥이 줄을 그으며 떨어지는 모습도 보았다. 오버랜드 트러킹이 아니었다면 평생 체험하지 못할 일생일대의 멋진 밤 산책을 나는 그날 호바스에서 누렸다.


여행 나흘째. 드디어 나미브사막의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을 찾는 날이었다. 목적지는 세스리엠. 사막 황무지 560km를 트럭으로 10시간쯤 달려야 닿는 곳이다. 이 공원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5500만 년) 나미브사막의 비경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사구(dune)사막 소수스플라이가 있는 곳이다. 사구사막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크고 작은 모래언덕이 거대한 사막을 빈틈없이 뒤덮은 모습은 마치 파도 일렁이는 바다 수면을 연상시킨다. 나미브사막(8만900km²)은 남아공 북쪽 대서양(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길게 발달했는데 그 크기가 남한(9만9293km²)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크다. 나미브라는 말 자체도 ‘넓고 광활한 지대’라는 뜻으로 국명 ‘나미비아’ 역시 예서 유래했다.

여행 닷새째. 이날 트럭은 오전 5시, 해가 뜨기도 전에 캠프사이트를 출발했다. 지구상 최고의 해맞이라고 소문난 소수스플라이의 듄45(높이 170m·‘듄포티파이브’로 읽음) 정상에서 해돋이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사구는 바람의 소산이다. 바람에 날려 온 고운 모래의 축적물이라는 말인데 작은 것은 높이 50m에 불과하지만 큰 것은 300m나 된다. 듄45에 도착해보니 벌써 여러 사람이 모래능선을 따라 걸어 오르고 있었다. 사구의 바다를 보려면 반드시 올라야 하는데 듄 트레킹은 생각보다 힘들다.

‘플라이(Vlei)’는 아프리칸스(아프리카의 네덜란드 정착민에 의해 생긴 토착어)로 ‘사막의 녹지대’를 뜻한다. 사막에도 가끔 비가 내려 때때로 물이 강처럼 흐르고 호수처럼 고이는 경우가 있다. 이때 스며든 지하수를 찾아 수십 m씩 뿌리내린 나무(주로 아카시아)에 의해 녹지대가 형성된다. 소수스플라이가 대표적인 곳으로 그 옆에는 ‘데드플라이’라는 죽은 녹지대도 있다.

데드플라이는 사진작가의 혼을 빼앗아 갈 만큼 기이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막의 보석. 우리나라 작가 김중만도 여기서 작업한 적이 있다. 온통 사구에 둘러싸인 이 분지는 플라이라는 말 그대로 과거에는 ‘녹지’였다. 그런데 1000년 전 더는 물이 고이지 않게 됐고 그래서 여기 서식하던 80여 그루 아카시아 나무가 모두 고사했다. 지금 탄화되어 새까맣게 변한 나무가 희고 붉고 노란 각색의 주변 토양과 대비를 이루며 천상의 풍광을 자아내는 데드플라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600∼900년쯤 전의 일이다.남아공·나미비아=

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동아일보 조성하 기자=오버랜드 트러킹 출발 첫 날








○ 여행정보


노매드 어드벤처 투어의 가이드가 오버랜드 트러킹 트럭 실내에 매일 그려두는 하루 일정과 루트 지도.
노매드 어드벤처 투어의 가이드가 오버랜드 트러킹 트럭 실내에 매일 그려두는 하루 일정과 루트 지도.
◇오버랜드 트러킹 ▽노매드 어드벤처 투어=오버랜드 트러킹 전문 여행사(남아공 케이프타운 소재). 2∼56일 일정별로 40여 개 루트상품을 국내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인터아프리카(www.interafrica.co.kr)를 통해 판매 중. 인터아프리카의 오버랜드 트러킹 패키지는 ‘노매드 투어+출발 전 케이프타운 투어+입국비자 사전발급+왕복항공권’으로 구성된다. 20일 코스는 ‘남아프리카 완전일주 29일 트러킹 투어’로 판매 중인데 가격은 369만 원. 상세한 정보가 홈피에 있고 직접 체험한 직원 2명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02-775-7756

◇관련 웹사이트 ▽캠프사이트 △Gekko Backpackers: www.gekko.co.za △Fiddlers Creek: www.bushwhacked.co.za △Hobas: www.nwr.com.na/hobas.html △세스리엠: www.nwr.com.na/sesrie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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