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세자빈의 눈으로 되짚어본 인조와 소현세자 비극적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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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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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별궁의 노래’
연기 ★★★ 연출 ★★☆

인조와 소현세자의 비극적 부자 갈등을 그 최대 희생양인 소현세자빈 강씨의 관점에서 극화한 연극 ‘별궁의 노래’. 사진 제공 극단 신화
인조와 소현세자의 비극적 부자 갈등을 그 최대 희생양인 소현세자빈 강씨의 관점에서 극화한 연극 ‘별궁의 노래’. 사진 제공 극단 신화
올해는 조선 인조와 그 맏아들 소현세자의 비극적 갈등을 배경으로 한 역사물이 눈에 많이 띈다. TV 사극 ‘추노’와 김인숙 씨의 소설 ‘소현’이 대표적이다. 극단 신화의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인 ‘별궁의 노래’(각색·연출 김영수)는 연극을 통해 이 사건에 접근한 작품이다.

김용상 씨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은 소현세자빈 강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는 이 사건의 비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참신한 접근법이었다. 강씨야말로 시아버지 인조가 벌인 참극의 최대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강씨는 여인의 몸으로 남편을 따라 8년간 이역만리 적국에서 인질생활을 하다 생환했지만 왕이 될 것이라 믿었던 지아비의 허무한 죽음을 목도한다. 맏아들(당시 11세) 몫이어야 했던 세자의 자리를 시동생 봉림대군(훗날 효종)에게 뺏기는 것도 지켜봐야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은 시아비가 내리는 사약을 마시고 숨을 거둬야 했고 세 아들 모두 제주로 유배돼 그중 위의 둘이 병사한다. ‘리어왕’의 막내딸 코델리아에 비견할 만한 비극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연극은 남성 중심의 역사 기록에서 동정의 대상에 머물던 강씨(노현희)를 주체적 여성으로 부활시킨다. 그는 “궁궐 여인의 몸으로 장기간 넓은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말하는 여장부다. 직접 농장을 경영하며 세자 일행이 머물던 관소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한다. 조선 사대부의 ‘우물 안 개구리’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소현(정찬훈)을 독려하고 ‘복수혈전’에만 몰두하는 봉림(강성민)을 견제한다. 심지어 인조(최준용)의 총애를 받던 조소용(이은정)을 상대로 정치게임을 펼친다.

그러나 강씨를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비극의 핵심인 인조와 소현의 부자 갈등이 처첩 간 갈등의 산물로 왜소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조는 조소용의 치마폭에 싸여 아들 내외의 충심을 저버린 못난이가 되고 소현은 그런 아비 앞에 벙어리 냉가슴 앓는 무력한 아들로만 그려진다. 부자간 대립의 본질을 간과한 채 부국강병만 앞세우는 근대적 시각이 투영된 대중적 통념에 의존한 결과다.

인조와 소현의 비극은 병자호란뿐 아니라 그에 앞선 인조반정을 함께 읽어낼 때 비로소 풍성해진다. 반청친명을 내세워 삼촌 광해군을 타도하고 집권한 인조에게 친청 노선으로 기운 소현의 귀국은 곧 ‘죽은 삼촌의 귀환’과 같은 공포체험이었을 것이다. 이런 두터운 해석을 토대로 이 사건이 ‘리어왕’에 필적할 심층 비극으로 재탄생하길 기대해본다.

:i: 2만∼3만 원. 30일까지 서울 성동구 왕십리길 소월아트홀. 02-923-213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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