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찍음’… 경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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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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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사진행위…’ 전

이명호 씨의 ’바다 #2’의 부분. 아라비아 사막에서 대형 캔버스 천으로 오아시스(흰색 부분)를 표현한 작품이다. 사진 제공 성곡미술관
이명호 씨의 ’바다 #2’의 부분. 아라비아 사막에서 대형 캔버스 천으로 오아시스(흰색 부분)를 표현한 작품이다. 사진 제공 성곡미술관
거대한 사막 저편에 아련하게 수평선이 보이는 듯하다. 멀리서 보면 바다 같은데 한발 다가서면 도무지 정체를 짐작하기 힘든, 흰색 선(線)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실재하는 것이 아닌, 작가의 인위적 개입을 통해 만들어낸 풍경이다. 고비 사막 한복판에 320명이 줄지어 도열한 뒤 흰색 캔버스 천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들고 선 모습을 찍었다. 8m 길이의 작품은 분명 사진이지만 사실적인 것을 배제함으로써 회화와 사진의 경계 지점에 자리한다.

6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02-737-7650)에서 열리는 사진가 이명호 씨(35)의 ‘사진행위 프로젝트’전에서 선보인 ‘바다’ 시리즈다. 또 다른 연작 ‘나무’는 마치 나무의 초상사진을 찍듯, 크레인으로 광목천을 나무 뒤편에 세운 뒤 촬영했다. 사막도 나무도 사진이면서 그림처럼 보인다.

“사진행위 프로젝트란 이름 아래 진행해 온 두 연작은 사진의 재현 행위에 대한 작업이다. 사진이 재현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사진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 사진이란 세상의 한 지점을 드러내 환기시키는 것인데 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런 고민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고민한 작업이다.”

서울대 수학과를 다니던 그는 수학이나 물리로 세상 이치가 전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예술로 삶의 길을 틀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 ‘팩토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이란 매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파고든 작업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2009년 미국 뉴욕의 요시밀로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었고 내년 초 게티미술관에서 사진집이 나오고 전시도 가질 예정이다.

‘나무’ 시리즈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바다’ 연작은 현실 안에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 작업이란 점에서 반대되는 개념을 담고 있다. 회화와 사진의 경계적 부분에 자리한 작품은 어찌 보면 심심하고 덤덤하다. 한데 자꾸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맛처럼, 보면 볼수록 울림이 느껴진다.

“입구에 ‘천천히 걸으세요’란 문구를 쓰고 싶었어요. 작품도 몇 점 안되고 이미지도 단순해서 관람객이 느릿느릿 걸으면서 비어 있는 여백을 느껴야 하는 전시니까요.”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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