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지 말라고 태극기 몸에 둘러… 라이프誌 표지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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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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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무대 바리케이드 넘은 서울대 사범대생 송영선 씨

송영선 씨가 경무대 앞 시위 당시 태극기를 두른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내보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송영선 씨가 경무대 앞 시위 당시 태극기를 두른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내보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바리케이드를 함께 뛰어넘자고 했는데 다 실패하고 나 혼자 성공했던 것이죠.”

송영선 씨(69)는 4·19혁명 당시 경무대로 향하는 시위대를 막고 있던 첫 번째 바리케이드를 가장 먼저 넘은 학생이었다. 송 씨는 50년이 흐른 15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경복궁 옆 청와대 진입로를 다시 찾았다. 그는 “동료들은 A자 목책과 철망을 두른 바리케이드에 걸리거나 넘어져 한 번에 뛰어넘지 못했다”며 “갑자기 혼자 앞에 서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1960년 당시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2학년인 송 씨는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나섰다. 당시 경무대로 행진하는 학생들의 맨 앞에는 동국대 학생들과 서울대 사범대 학생들이 있었다.

이날 중앙청 안쪽에서 소방차가 물대포를 쏘아대는 가운데 태극기를 두르고 바리케이드를 넘어 뒤를 돌아보는 송 씨의 모습은 동아일보 기자의 카메라에 담겨 각종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송 씨는 “태극기가 있으면 경찰이라도 감히 총을 쏘지 못할 것 같아 이를 두르고 있었다”며 “‘쏘지 마!’라고 외치다 찍힌 이 사진이 당시 미국 시사 화보 잡지 ‘라이프’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송 씨가 몸에 두르고 있던 태극기는 당시 경무대로 향하는 길에 시위대 누군가로부터 건네받았다고 한다.

송 씨는 “다시 모두 함께 서너 개의 바리케이드를 넘어 경무대 입구까지 갔는데 경찰이 실탄 사격을 시작했다”며 “경찰은 도망치는 학생들 등 뒤로 계속 총을 쏘았다”고 회상했다. 송 씨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정도의 길 옆 배수로 공간에 숨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송 씨는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며 “20분 정도 숨어 있다가 골목으로 빠져나와 혜화동에 있던 수도의과대 병원에 갔더니 그곳에서만 두 명이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50년 전이지만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합니다. 당시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죠. 4·19혁명 정신은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순수한 정신인데 이후의 정치세력들이 악용하거나 폄훼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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