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와 ‘추노’에서 절정의 연기 보여준 성동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5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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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 의해 오해받는 연기자들엔 두 타입이 있다. 연기력도 별로 없는데 꽥꽥 울부짖는 '포스(force)' 덕분에 '연기파'로 과대평가되는 경우와, 굉장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감초 연기자' 정도로 치부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최근 영화 '국가대표'와 TV드라마 '추노'에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성동일(43)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특히 추노에서 성동일의 연기는 일반적인 평가처럼 가볍지도, 값싸지도 않다. 추노에서 그가 보여주는 연기에 돋보기를 들이대 보자. 그의 연기가 외향적이고 직설적이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가? 그게 바로 선입견이다. 정반대로, 그는 매우 내성적이고 입체적이면서 진중한 연기를 구사한다.

킬러 황철웅(이종혁)의 손에 죽은 심복 만득이의 시체 앞에서 그가 짓는 표정의 파노라마를 보자. "봐라, 이놈아. 배산임수야. 뒤로는 산이 쫙 버티고 있고, 앞에는 물이 쫙 펼쳐져 있고. 이키키키. 언니(자기 자신)나 되니깐 이런 명당자리 잡아주는 거야"하면서 발기발기 찢어진 내심을 농(弄)을 통해 반대로 표출하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표정(사진 1-1)으로 출발한 그. 돌연 무표정(사진 1-2)으로 감정의 분기점을 만든 뒤 순식간에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 게 이 천지호야 천지호"하면서(사진 1-3) 감정을 폭발시킨다. 직후 그는 "이키키키"하는 정체모를 웃음을 구사하면서(사진 1-4) 열렸던 감정의 문을 싹 닫아버린다. 0.5초도 안 되는 찰나에 벌써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은 비등점을 찍고 내려온다.

천지호가 죽어가는 장면에서도 그는 자기 입에 동전을 집어넣으면서 스스로를 가엾게 위로하는 듯 하더니(사진 2-1), 죽음을 앞둔 극도의 공포를 아주 잠깐 내비치다가(사진 2-2), 이내 체념의 표정으로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이 발꼬락(발가락) 좀 긁어줘, 대길아"하는 유언을 남기며 숨진다(사진 2-3). 다층적인 감정의 파노라마를 그는 하나의 연기호흡에 태워 담아내는 것이다.

이때 절묘한 역할을 수행하는 감정조절의 장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가 누구야 천지호야, 천지호"하는 입버릇 같은 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끼끼끼"하는 기괴한 웃음소리다. 이들 두 가지는 살짝 드러났던 천지호의 본심을 순식간에 다시 감추면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비열한 천지호 캐릭터의 통일성을 이어가는 효과를 낸다. 이때 시청자는 천지호의 다시 모호해진 표정과 웃음소리로 연막이 쳐진 그의 내심을 궁금해 하면서 그 야릇한 제스처에 담겨진 진의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려 들게 된다. 성동일은 등장인물의 내면과 얼굴표정을 서로 충돌시킴으로써 보는 이의 몰입도를 한층 더 높이는 것이다!

성동일의 연기가 극에 달한 대목은, 옥에 갇힌 대길을 찾아간 천지호가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내가 너 구해줄 거야"하고 싸늘하게 말하는 대목(사진 3). 비열하고 살기어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표정 속에는 여러 개의 감정을 동시에 표출함으로써 결과적으론 그 어떤 감정도 100% 드러나지 않도록 만드는 그의 연기철학이 드러난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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