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과 함께 하는 포토 트레킹]가평 아침고요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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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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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다가앉는 봄, 무릎 꿇어 맞으리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향기로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내 가슴 속에 이미
피어있기 때문이다

<한상경의 ‘나의 꽃’에서>

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다. 경기 가평 아침고요수목원(02-1544-6703)은 ‘고요’했다. “에구! 이거 꽃이 없으니 볼 게 아무것도 없잖아!” 사람들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건성건성 정원을 지나쳐버렸다. 볕은 따뜻했다. 알싸한 바람 속엔 포근한 봄 씨앗이 꼬물거렸다. 매운 바람꽃은 피지 않았다.

골짜기 시냇물이 “찰! 찰! 찰!” 제법 소리를 내며 흘렀다. 바위비탈에선 우렁우렁 낙숫물이 힘차게 떨어졌다. 버들강아지 하얀 꽃망울이 탱탱 불었다. 복슬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비비댔다. 뽀송뽀송 부얼부얼한 솜털이 앙증맞았다. 영락없이 눈 비비며 일어나는 강아지였다.

목련 꽃망울도 젖몸살을 앓고 있었다. 메마른 산수유나무는 쌀알만 하게 꽃눈이 돋았다. 짐승 수컷들 젖꼭지 같았다. 산수유 마른 검버섯 줄기는 뱀처럼 허물을 벗고 있었다. 화살나무 날개는 금방이라도 빙글빙글 돌며 과녁을 향해 날아갈 듯했다. 얼룩무늬 모과나무의 삐죽한 가시 끝에도 연두물이 올랐다. 20, 30대 근육질의 단풍나무 줄기는 매끈하다 못해 뺀질거렸다. 물기 머금은 바람이 근육을 탱탱하게 만들었다.

수목원 초가집 마루에 앉아 눈을 감았다. 봄은 이미 저녁밥 짓는 냄새처럼 낮은 포복으로 와 있었다. 도둑처럼 소리 없이 슬그머니 와 있었다. 그렇다. 시인은 말한다.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온다’(이성부)고. 봄은 결코 꽃으로 화려하게 오지 않는다. 꽃은 맨 나중에 온다.

봄은 냄새로 먼저 온다. 소리로 처음 온다. ‘소리를 보는’ 관음(觀音)으로 적셔온다. 버들치 시냇물 거슬러 올라가는 소리, 지리산동굴 반달곰 뼈마디 푸는 소리, 산골다람쥐 늘어지게 하품하는 소리, 이른 아침 까치 떼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 골목길 아이들 노는 소리….

“우리는 꽃 따위는 기록하지 않는단다. 꽃은 덧없는 것이기 때문이야.…잘 가!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다는 거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아침고요수목원은 경기 가평군 축령산(879m) 기슭 10만여 평에 자리 잡고 있다. 오밀조밀 아담하다. 1996년 삼육대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가 갈고 닦아 문을 열었다. ‘아침고요’ 이름은 인도시인 타고르(1861∼1941)의 시구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따왔다. ‘곡선과 비대칭’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고유의 선을 살리는 데 힘썼다. 4500여 종의 식물이 오순도순 자란다. 산자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 초가마을처럼 자연스럽다.

들꽃은 눈높이부터 맞춰야 볼 수 있다. 서서 걸어 다니면 보이지 않는다. 무릎을 낮춰 찬찬히 살펴보면 눈부신 연둣빛 풀꽃세상이 펼쳐진다. 아침고요수목원의 언 땅도 이미 완강한 근육을 풀었다. 뱃살이 트여 고슬고슬해졌다. 작고 여린 아기 싹들이 우우우 머리를 들고 있다. 그 가냘프고 보드라운 살로 언 땅을 비집고 나온다.

‘들꽃언덕에서 알았다/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그래서 들꽃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들꽃언덕에서 알았다.’

<유안진의 ‘들꽃언덕에서’>


푸른 맥문동이 허리를 꺾고 겨우내 다발로 땅에 누워있다. 그 옆에서 은회색 은쑥들이 뿅! 뿅! 뿅! 머리를 들고 있다. 복수초도 어느새 잎을 틔워 건강한 초록색이다. 얼레지꽃은 5, 4, 3, 2…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다. 작약 옥잠화 둥근 뿌리의 씩씩대는 숨소리가 들린다. 냉이와 쑥들은 일찌감치 자리 잡고 넉살좋게 웃고 있다. 시골 개구쟁이들처럼 씩씩하다.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도 큰다.

원추리 연두 싹은 배시시 웃으며 얼굴을 내민다. 원추리는 영어로 ‘데이 릴리(Day Lily)’이다. 꽃을 딱 하루만 피운다는 뜻이다. 하루살이 꽃인 셈이다. 한국 사람들은 아예 원추리를 나물로 먹는다. 요즘이 딱 제철이다. 넘나물 엄나물로 부른다. 두메부추의 넓적한 잎도 돋아난다. 꼿꼿하고 기세등등하다. 엄동설한 보리 싹 같다.

수목원 오른쪽 옆엔 산책길이 있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낙엽송 가문비나무 측백나무 등 온통 바늘잎나무 숲이다. 뒷짐 지고 느릿느릿 걷는다. 호젓하다. 바닥엔 적갈색 바늘잎이 쌓였다. 피톤치드 냄새가 향기롭다. 가슴속 찌든 먼지가 가신다.

피톤치드는 ‘식물’이라는 뜻의 ‘피톤(phyton)’과 ‘죽이다’는 뜻의 ‘사이드(cide)’가 합쳐진 말이다. 나무가 뿜어내는 ‘식물성 살균물질’을 말한다. 나무는 이것을 무기로 세균 해충 곰팡이들과 싸운다.

수목원유리온실에 들꽃이 화르르 피었다. 산과 들에 살던 야생초가 따뜻한 방안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매운바람, 꽃샘추위를 단번에 건너뛰었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화사하다. 노란 복수꽃은 지천으로 웃고 있다. 하얀 노루귀꽃이 깜찍하다. 멸종위기 보랏빛 깽깽이풀꽃도 깜짝 모습을 드러냈다. 우아하다. 할미꽃은 금세 꽃망울이 터질 것 같다. 좁쌀처럼 주저리 다발로 매달린 하얀 돌단풍 꽃도 넋을 뺀다.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를 들이댄다. “찰칵!” 셔터가 울리는 순간, 카메라맨은 ‘그 꽃이 영원히 자신의 것이 됐다’라고 생각한다. ‘꽃의 넋을 사로잡았다’라고 착각한다. 꽃은 아무 말이 없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이다. 그것을 다 드러내놓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식물은 씨앗을 맺기 위해 꽃을 피웠을 뿐이다. 그래야 종족번성을 할 수 있다. 벌 나비도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꿀을 딴다. 천지불인(天地不仁). 강호는 그저 무심하다. 강물은 그저 아래로 흘러간다. 삶과 죽음도 돌고 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햇볕은 따스하다. 바람은 꼬물꼬물 살갗에 부드럽게 감긴다. 흙은 말랑말랑하고, 고슬고슬하다. 때가 왔다. 이젠 촉촉한 봄비만 남았다. 꽃 피는 건 시간문제다.

봄꽃의 북상 속도는 하루 20km. 가을 단풍의 남하 속도는 하루 25km다. 봄은 더디 오고, 가을은 쏜살같이 달아난다. 꽃이 피는 그 순간, 봄은 붉은 동백꽃처럼 모가지를 툭 꺾는다. 연분홍 봄날은 그렇게 간다.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꽃이/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어린왕자가 사는 ‘작은 프랑스’▼


가평군엔 프랑스 문화마을 ‘쁘띠 프랑스’가 있다. 2008년 7월 강원 고성군 청소년수련관에서 조성한 ‘프랑스테마 문화공원’이다. 한국 안의 ‘작은 프랑스’라고 할 수 있다. 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촬영지로 이름난 곳이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나름대로 프랑스 문화를 느껴볼 수 있다. 150∼200년 된 프랑스 주택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프랑스 옛날 악기인 오르골하우스도 눈에 띈다. 하루 4번 오르골 연주가 있다. 식당과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도 있다. 예약(031-584-8200)이 가능하다.

마을 뒤쪽 숲길은 새벽 산책으로 안성맞춤이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에 발바닥이 간지럽다. 30분 거리로 오르막도 심하지 않다. 청평호가 눈 아래 펼쳐진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1900∼1944)기념관에선 그의 생애와 작품해설 등 그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어린왕자를 만화영화로도 감상할 수 있다. 생텍쥐페리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외가와 누이 손에서 자랐다. 그는 외로움을 남몰래 삭이며 평생 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꿈꿨다. 말이 별로 없고, 뭔가 늘 혼자 골똘히 생각했다. “나는 저녁 9시 이후에만 살았다”(야간비행)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사막을 그리워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다.

어린왕자는 속삭인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사막은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어서예요. 아저씨, 들리지요! 우리가 우물을 깨웠더니, 우물이 노래를 부르잖아요?”

|트레킹 정보|

◇교통
▽기차=청량리→청평역→청평버스터미널(도보 5분)→수목원행 시내버스 ▽버스=청량리, 상봉·동서울터미널→청평버스터미널→수목원행 시내버스 ▽승용차=①서울→구리→마석→청평→청평검문소(좌회전)→풍림콘도→임초리(좌회전)→수목원 ②서울→퇴계원→서파검문소(우회전)→현리→상면쉼터→임초리(우회전)→수목원 ③서울→강일나들목→서울춘천고속도로→서종나들목→391번지방도로→청평휴양림→신청평대교→청평검문소(좌회전)→풍림콘도→임초리(좌회전)→수목원

◇음식 ▽초가집=국수호박 잣국수 시골밥상 031-585-6597 ▽오성가든=한방보쌈정식 황태구이정식 막국수 031-585-5501 ▽옛골=한정식 031-585-1818 ▽종가집=춘천닭갈비 막국수 031-584-0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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