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그래, 나도 2002 월드컵때 시청광장서 응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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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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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행이론’ 참신한 소재 싱거운 결말

‘평행이론’은 흥미로운 발상이 흥미로운 영화의 충분조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론’에 대한 연출의 집착에 가린 배우들의 호연이 아쉽다. 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평행이론’은 흥미로운 발상이 흥미로운 영화의 충분조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론’에 대한 연출의 집착에 가린 배우들의 호연이 아쉽다. 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평행이론’(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의 골조 아이디어는 그럴싸해 보인다. “100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삶을 반복했다”며 제시하는 전 미국 대통령 링컨과 케네디의 비교 사례는 흥미롭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아이디어 위에 쌓아 올린 영화 속 이야기는 상영시간 110분 내내 답답하게 비틀거린다.

장편 데뷔 감독의 반짝이는 발상이 경험 미숙으로 아쉽게 묻혀버린 것일까. 그건 아닌 듯하다. 찬찬히 뜯어보면 출발점으로 삼은 아이디어부터 설득력이 부족하다. 잘 만든 뼈대 위에 살을 덧붙인 솜씨가 모자랐던 것이 아니라 기초공사부터 허술했다.

도입부에 링컨과 케네디의 ‘평행’ 사례가 나온다. ‘각각 1846년, 1946년 의원 당선.’ 여기부터 살펴보자. 케네디는 29세이던 1946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링컨이 일리노이 주 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한 해는 25세 때인 1834년이다. 1846년은 링컨이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해다. 나이는 37세였다.

다음에 제시한 근거는 각각 1860년, 1960년에 대통령이 됐으며 두 사람 모두 금요일에 암살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4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100년 간격으로 ‘평행’하게 당선된 역대 대통령은 링컨과 케네디뿐이 아니다. 암살된 해는 링컨이 1865년, 케네디가 1963년으로 평행이론이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2년의 ‘오차’가 없었다면 영화는 굳이 두 대통령이 사망한 요일을 꺼내 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암살 장소는 각각 포드 극장과 포드 자동차, 암살범은 각각 1839년생과 1939년생, 후임 대통령은 1808년과 1908년에 출생한 존슨 성을 가진 인물…. 보도 자료에는 암살되기 한 주 전에 링컨은 메릴랜드 주 먼로 시에, 케네디는 여배우 메릴린 먼로와 함께 있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영화의 실마리가 꼭 현실적 개연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허구라도 흥미롭게 전개하면 관객은 즐겁게 용인한다. 그러나 별로 말이 안 되는 얘기를 정색하고 증명하려 들면 불편해진다.

소개팅 자리. 상대방이 맘에 든다면 어떻게든 ‘우연한 공통점’을 찾으려 애쓰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가수나 탤런트가 일치하면 일단 안심이다. ‘2002년 월드컵 8강전을 같은 호프집에 앉아서 봤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거의 홈런을 친 것처럼 짜릿해진다.

우연의 공통점이 운명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자리를 화기애애하게 이끌 실마리로는 쓸 만하다. 하지만 실마리는 실마리일 뿐이다. 정말 운명이라 믿고 혼자서 들떠 흥분하는 상대방에게 선뜻 반갑게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럴듯한 분위기의 영상과 음향을 걷어낸 ‘평행이론’에는 억지로 끼워 맞춘 이야기의 헐거운 이음매와 성정이 굳건하지 못한 남자의 치정 살인극이 남는다. “그게 다 운명 탓”이라는 식의 발상. 지루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 ▶dongA.com에 동영상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예고편 보기] 다른 시대, 같은 운명 영화 ‘평행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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