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충무로 식객같던 그 배우가 귀인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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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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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개봉한 ‘식객: 김치전쟁’의 주연은 김정은과 진구다. 하지만 영화를 볼 맛 나게 만들어주는 ‘주역’은 주인공인 요리사 배장은(김정은)과 성찬(진구)이 아니다. 조악하게 쌓아올린 건물에 실망한 미술관 관람객의 발품 판 수고를 보상해주는 한 점 그림 같은 조연. 그 배우는 성지루다.

허영만의 원작만화 ‘식객’은 영화로 요리할 생각을 버리기도 어렵지만 막상 손질하려니 난감했을 재료다. 배장은과 성찬의 레시피 대결 냄새를 풍기는 포스터와 제목은 관객의 구미를 당긴다. 김치 대 기무치, 불고기 대 야키니쿠의 한일전을 차려낼 듯했던 도입부도 흥미롭다. 원작만화 컷의 말풍선 내용만 재치 있게 바꿔 편집한 오프닝 크레딧은 먹음직한 메뉴판 사진처럼 기대감을 부풀린다. 하지만 성찬(盛饌)은 애피타이저까지다.

성장환경에 한을 품고 일본으로 떠나 국빈만찬 셰프가 될 정도로 눈부시게 성공한 배장은. 영화 초반 그가 느닷없이 귀국하면서 영화는 메인요리 재료를 잃는다. 한국 김치의 우수성을 영화로 풀어내 일본 기무치를 찍소리 못하게 눌러주는 내용은 너무 촌스럽다고 생각한 것일까. 굳이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까지 등장시켰던 거창한 오프닝은 한국 내 김치 요리 집안싸움으로 급격히 졸아든다. 게다가 의남매 대결이라니. 정말 그냥 ‘집안싸움’이다.

동력 잃은 이야기가 삐걱대는 와중에 진구의 개성과 김정은의 매력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성찬의 여자친구인 요리담당기자 진수(왕지혜)는 만화책에서 그대로 뛰어나온 듯한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지만 존재감도 딱 만화 정도에 그친다.

관객의 허기를 달래주는 구원자는 영화 후반 에피소드를 이끌어가는 성지루다. 과실치사로 쫓기는 아들과 어머니의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사연’은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성지루는 ‘이런 뻔한 얘기에 코끝 찡해지면 안 되는데…’하는 심사로 버티는 관객의 마음을 후드득 녹여버린다.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 배우는, 연기 잘하면 그만이다. ‘식객: 김치전쟁’의 미덕은 그 당연한 사실을 확인시켜준 데 있다. ★★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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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손택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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