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인간이… 과연 진화의 종착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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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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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바머 폭탄’서 착안
우화적-희극적 설정으로
인간중심 폭력사회 비판

소설가 김남일 씨.
소설가 김남일 씨.
◇천재토끼 차상문/김남일 지음/368쪽·1만 원·문학동네

제목처럼, 이 소설은 어느 ‘천재토끼’의 일대기다. 토끼는 토끼이되 영장목으로 분류되는 토끼다. 그러니까 학명으로 따지면 레푸스 사피엔스(Lepus sapiens)쯤 될까. 이름은 차상문. 시골 초등학교 교사이던 어머니가 경찰 대공 수사관인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원치 않게 가지게 된 첫아들이다. 국가, 가부장제 폭력의 전형인 아버지에 의해 태어난 변종.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애초부터 우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전후 후유증과 이데올로기 대립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50년대부터 군사정권의 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진 시대의 굴곡 역시 이 천재토끼의 일생을 통해 압축적으로 반영된다. 작가는 인간 중심적인 문명사회에 태생적 반골로 출생한 차상문의 일생을 간추리거나 생략하며 구술적으로 끌어간다.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전개되나 조금씩 거칠다. 시종일관 익살스러운 화법이 두드러지는 것도 특징이다.

차상문은 어릴 때부터 천재로서 두각을 드러낸다. ‘명심보감’ ‘동몽선습’을 외고, 영어 원전으로 소설책을 읽는 식이다. 책을 너무 좋아해 동생 차상무(동생은 정상인이다)가 베고 자던 ‘단기 4292년 경상북도 통계연감’을 빼앗아 읽으려다 싸움이 날 뻔하기도 한다. 통역 없이도 미국인과 능수능란하게 대화할 수 있을 만큼 영특했던 차상문은 마침내 미국 버클리대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토끼 영장류가 자신뿐만이 아니며 진보적 학풍의 버클리가 ‘미래 지구의 종 다양성을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받아들인 것을 알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개발주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만연한 조국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또한 산업화된 문명에 반대하는 은자 쿠나바머와의 교류를 통해 인간 중심주의에 비판적인 안목을 갖는다.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 일하게 된 그는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시기 교수직을 관두고 ‘민주주의 너머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영장류 연대’를 조직해 실험적인 대안운동을 펼치게 된다.

‘천재토끼 차상문’은 토끼는 토끼이되 영장목으로 분류되는 주인공 차상문을 통해 인간 중심적 문명사회를 풍자한다. 일러스트 제공 문학동네
‘천재토끼 차상문’은 토끼는 토끼이되 영장목으로 분류되는 주인공 차상문을 통해 인간 중심적 문명사회를 풍자한다. 일러스트 제공 문학동네
문명비판적이며 생태주의적 성격을 지닌 그의 운동은 이후부터 좀 더 집요하면서도 직접적인 방식으로 변모해 간다. 정부 기관에 정체불명의 상자를 보내 ‘걸을 때 제발 쿵쿵거리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며 물감을 폭발시키는 장면 등은 희극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기술산업문명 전체를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우편물 폭탄테러를 자행했던 미국의 철학자이자 테러리스트인 존 카진스키(일명 유나바머)의 일화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차상문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여느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끝내 세상과 타협지점을 찾지 못하지만 소설이 던지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이런 문장들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간이…과연 진화의 종착지일까요?”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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