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등 호남서 유독 강한 의리 정신, 하서 김인후 선생 충절 이어온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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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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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려시대 인물 106인 평전
‘전라도 사람들’ 펴낸 김정수 씨

학자 군주인 조선의 정조는 “나만큼 하서(河西)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공언할 만큼 조선 중기의 문신 하서 김인후(1510∼1560)를 높이 평가했다. 정조실록 부록에는 정조의 하서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우리나라가 선 이후로 앞장서서 성리를 천명하고 도의 근원을 훤히 안 사람은 문정공(하서의 시호) 한 사람뿐이다. 그의 시 ‘하늘과 땅 사이에 두 사람이 있으니, 중니는 원기요 자양은 진이다’를 보면 그 학식이 다른 유학자들보다 월등함을 알 수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주돈이다.” 정조가 그를 문묘에 배향한 것도 이런 이유다.

올해 탄생 500주년을 맞은 하서 김인후의 생애를 정리한 평전을 포함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도 출신 106인의 생애를 담은 6권의 책 ‘전라도 사람들’(장문산)이 최근 출간됐다. 저자는 김정수 전 광주 금호고 교장(80·사진). 1995년 퇴직 이후부터 15년간 원고지 8000여 장에 선조들의 행적과 사상을 육필로 빼곡히 담았다.

오랜 기간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 규장각을 오가며 책과 씨름하는 사이에 선조들의 삶이 저자에게 스며들었는지 최부 박상 이희맹 최산두 양팽손 등 조선조 학자들의 이름과 행적이 저자의 입에서 술술 흘러 나왔다.

김 전 교장은 “굳이 지역색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전라지역 사상적 원류를 찾아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 생각보다 긴 작업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이 지역에 흐르는 ‘의리의 정신’이었다. 그는 “임진왜란은 물론 정묘·병자호란, 구한말의 의병 등 전라지역에는 유독 의병활동이 많았다. 그런 분위기가 어디에서 연유했는지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류를 찾는 과정에서 김인후가 이 지역 ‘의통(義統)’의 중심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하서는 자신이 가르쳤던 인종의 서거 이후 명종이 내리는 교지를 끝내 거부하며 정계에 진출하지 않았다”며 “당시의 가치관으로는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뛰어난 절의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하서는 문장과 도학에도 뛰어나 같이 활동했던 퇴계에 절대 뒤지지 않은 인물인데 현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시대 도선국사부터 조선의 김인후에 이르는 인물의 평전을 쓰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문중을 찾아가 자료를 수집하고 묘지(墓誌)와 문집을 다시 읽고 해석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전라지역의 의맥(義脈)을 찾는 일을 ‘의를 지킨 선비’ ‘임진왜란 의병’ ‘한말 의병활동’ 등으로 확장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런 노력을 알게 된 금호고의 제자들은 은사의 책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출판비용 수천만 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김 전 교장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사명감으로 시작했지만 능력이 모자라 세상에 나온 책이 두렵다”고 말하고 “어렵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누군가 전라지역의 학풍에 대한 연구를 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덧붙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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