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국선 잊혀진 ‘6·25’를 복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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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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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발/앤드류 새먼 지음·박수현 옮김/584쪽·1만5000원·시대정신

1951년 4월 22∼25일 벌어진 임진강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영국군 사상자를 낸 전투다. 주로 영국군으로 구성된 29보병여단은 중국군 36개 사단과 북한군 1개 군단을 저지했다. 그중에서도 글로스터 부대 750명은 퇴로가 차단돼 중국군 주력인 제36군 3개 사단 4만2000명과 전투를 벌인다. 5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병력으로 나흘을 버틴 글로스터 부대의 생존자는 50여 명에 불과했다.

워싱턴타임스 등의 서울 특파원으로 10여 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저자는 6·25전쟁이 한국에서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잊혀진 기억을 당시 참전용사는 물론이고 영국군, 한국군 관계자와 민간인 통역관, 피란민까지 만나 생생하게 복원했다.

샘 머서 씨는 전투 당시 22세 병사였다. 그는 압도적인 수의 적병을 맞아 야간에 백병전을 벌였고 죽음을 감수하며 적 벙커를 공격했다. 결국 마지막 교전이 벌어진 25일, 그는 진지에서 박격포탄 파편에 한쪽 눈을 잃었다. 72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하고, 48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지쳐 있었을 때다.

마지막 한 발까지 쏜 글로스터 부대는 이날 오전 10시 20분 탈출을 감행한다. 머서 씨를 포함한 일부는 중국군에 포로로 붙잡혔지만 병사 40여 명은 탈출에 성공해 한국군 1사단 12연대에 구출된다. 당시 지휘관이던 김점곤 대령이 맨발로 서 있는 영국군 병사를 보고 놀라 맨발로 다니는 게 영국군의 전통이냐고 물을 정도로 이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이때 참전했던 군인 중에는 전쟁의 기억 때문에 정신병원 신세를 진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 상처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수십 년 뒤 한국을 방문한 호주 출신 참전용사 한 명은 깔깔거리는 어린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아이들은 참 떠들썩하고, 명랑하고, 행복해 보이는군. 그때는 안 그랬어”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떤 이는 한국의 발전상을 보며 “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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