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정원을 꿈꾸다]<4>세미원(테마정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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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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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향에 취한 연못, 자연의 속살 비추다

꽃살문 장식한 정문에 기와담장-실개천 조성
전통정원 문화 고스란히

팔당호 주변 개발제한지
연으로 환경의식 일깨워

《“더 맑은 한강 더 아름다운 한강 더 풍요로운 한강!”
한강변이 수려한 경관, 현대에 살아 숨쉬는 전통. 2004년 조성된 경기 양평군의 세미원(洗美苑)은 이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목표를 위해 세미원은 환경, 교육, 문화, 복지, 산업 등 현대적인 공원의 영역까지 대담하게 끌어안고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조심스럽게 전진하고 있다.
불과 6년 만에 세미원이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세미원은 20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상수원 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 수생식물 중에서도 수질정화 작용이 가장 뛰어나고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서 오랫동안 함께해 온 연(蓮)이라는 단일 식물을 통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정원이다.》

세미원의 공간적 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생활 속에 피어 있는 연꽃을 관람할 수 있는 1차 공간, 다른 하나는 크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 연꽃과 수련꽃을 감상할 수 있는 2차 공간이다.

1차 공간은 정문과 향원각(香遠閣)이라고 부르는 육각형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세미원의 바깥 담장과 정문은 연꽃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담장은 소치 허련(小癡 許鍊)의 연화도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의 연화도로 장식되어 있고 정문은 사찰의 꽃살문을 투각으로 장식해 놓았다. 정문 안쪽으로 제일 먼저 우람한 석련지(石蓮池)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어 이곳이 연화(蓮花)세계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정문을 지나면 알록달록 꽃살문과 검은색 벽돌로 지어진 6각형의 4층 건물 향원각이 눈에 들어온다.

향원각의 어원은 중국 송대의 철학자로 조선 500년 신봉했던 주자학(朱子學)의 비조인 주돈이(周敦이) 선생이 말한 ‘향원익청(香遠益淸)’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향기는 멀리 퍼지고 그 맑음은 나날이 더한다’는 뜻이다.

향원각의 형태는 신라시대의 분황사 석탑을 참고했고 6각형 건물의 창문은 경북 영주에 위치한 보물 제832호인 성혈사 나한전의 꽃살문을 재현하였다. 연꽃이 만발한 연밭에 새와 물고기가 노닐고 그 사이에 청의동자 홍의동자 등 신선들이 노니는 모습을 투각 문살로 구성했다. 이런 모습은 세미원을 어떤 곳으로 가꾸어 나갈 것인지를 말해주는 상징인 것 같다.

향원각을 나오면 안쪽으로 검은 벽돌과 기와로 구성된 전통 담장이 있고 맞배지붕의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안쪽으로 노산 이은상 선생의 국토예찬시가 태극 문양과 함께 대문 안쪽을 장식했다. 불이문을 지나면 조그마한 실개천이 흐르고 실개천 건너 소나무 숲 속에 한반도 모양의 반도지(半島池)가 자리 잡고 있다.

반도지 다음으로는 세계 최고의 연꽃 연구가인 미국의 포트 패리 씨가 기증한 60여 종의 희귀 연꽃을 심어 놓은 연못, 조선시대 효자경연의 일화를 엮은 검은 잉어연못, 포석정 이후로 민간에 널리 퍼져 애용되던 유상곡수(流觴曲水)가 복원되었다. 또한 모네의 정원을 비롯하여 20여 개의 크고 작은 연못에 연과 수련이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다. 강 건너 두물머리에는 석창원(石昌園)이라는 온실이 있는데 이는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조상들의 자연 사랑의 자취를 다시 배우는 곳이다.

실내에는 고려시대 이규보 선생이 설계한 이동식 정자와 창덕궁에 있던 조선 왕실의 온실, 세계 최초로 보온과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500년 전의 농업용 온실, 조선 선비들이 즐겨 조성한 금강산이 장엄하게 버티고 있다.

이처럼 세미원은 삼국시대부터 발전되어 온 한국 전통정원 문화를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변질되었고 근현대화 과정 속에서 유입된 국적 불명의 정원문화가 활개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 정원의 사상과 기법을 계승 발전시킨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최선의 자연보호지만 팔당호 같은 인공호수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만이 수질보전의 최선의 방법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끊임없이 흘러내려오는 생활쓰레기를 비롯한 오폐수 등의 오염물질 때문에 팔당호의 자정 능력은 한계점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간의 손으로 가꾸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련의 사정들에 의해 세미원은 지역주민, 나아가 전 국민에게 물 환경의 중요성에 대하여 일깨우는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팔당호 주변 대부분은 개발제한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빈곤감이 아주 높은 지역이다. 이 같은 현실을 극복하려고 세미원에서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연의 특용작물화 작업을 서둘러 진행하고 있는데 특히 연의 열매를 주재료로 하는 궁중 술 내국감홍로(內局甘紅露)와 민간의 술인 연엽주(蓮葉酒), 백련으로 담은 백련막걸리 등을 복원해 상품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연구를 마치고 새로운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 밖에 연을 소재로 한 신경안정 효과를 지닌 기능성 식품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그중의 일부는 연구를 마치고 다가오는 해에는 몇 가지를 선보인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심우경 고려대 환경생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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