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3억 대륙 황태자’의 무기는 인화-소탈

中 차기 주석 유력 시진핑, ‘前 부총리의 아들’에서 나라의 미래 짊어지기까지

◇ 시진핑 평전/우밍 지음·송삼현 옮김/552쪽·2만5000원·지식의숲

2012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를 것으로 관측되는 시진핑. 젊은 시절 반동분자로 몰려 공산당 입당을 열 번이나 거절당했지만 결국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일로 4일간 방한 일정을 마치는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홍콩 싱다오(星島)일보의 중국뉴스 책임자인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중국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시진핑 전기’라고 밝혔다.

‘리커창(李克强)전’과 ‘후진타오 시대의 새로운 전략’을 쓴 저자는 시진핑이 리커창을 제치고 ‘황태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당의 여러 계파 모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국공산당은 민주형 또는 경쟁형의 정당이 아니기 때문에 치적보다 당에 대한 충성도와 함께 각 파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후계자 선택의 열쇠다. 시진핑은 태자당(중국 고위 관료의 자제) 출신으로 당의 인화단결을 해칠 가능성이 적고, 침착하고 온화한 성격 덕분에 적이 거의 없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10년 전만 해도 ‘중국공산당 원로이자 전 부총리 시중쉰(習仲勳)의 아들’ 혹은 ‘가수 펑리위안의 남편’으로 더 유명했던 시진핑의 어린 시절부터 황태자 등극까지 전 과정을 시대 순으로 펼쳐낸다. 시진핑은 문화대혁명 직전 아버지가 실각하면서 집을 몰수당하고 반동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홍위병조차 될 수 없었으며 공산당 입당을 열 번이나 거부당했다. 16세 때는 스스로 산시 북부의 황토고원으로 이주해 농촌 노동에 나섰다. 시진핑은 이때가 인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신념을 키우게 된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밝힌다.

시진핑은 당시에 대해 “권력과 접촉이 적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항상 권력을 매우 신비롭고 신선하게 생각하겠지만 (중략) 나는 권력과 꽃, 영광과 박수 소리만 보았던 것이 아니라 수용소도 보았고 염량세태(炎凉世態·권세 있을 때는 아부하지만 몰락하면 냉대하는 세상인심)도 보았다. 그래서 정치라는 것이 한층 더 준엄하고 모진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원로이자 부총리까지 지낸 아버지 시중쉰과 함께한 시진핑(오른쪽). 1980년대 초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 제공 지식의 숲

저자는 시진핑이 결코 ‘매력형’의 지도자가 아니라고 평가한다. 그는 정치에서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신봉한다고 말한다. 그가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도 문무를 겸비한 진시황 한무제 당태종 등이 아니라 유방 유수 유비 송강처럼 인화에 뛰어난 사람이다.

시진핑의 행적에는 인화단결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소탈과 청렴, 신중함이 스며 있다. 푸젠 성 닝더 시 서기 시절 설날에 쓰레기 매립장과 화장장을 돌며 노동자와 손을 잡고 차를 마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상하이 시 당서기로 발령 받고는 영국식 3층짜리 관사를 원로들의 요양원으로 양보했다. 평소 알던 농민이 골수염으로 다리를 자르게 되자 임지를 떠난 뒤에도 다시 찾아가 여러 문제를 도와주며 정성을 다했다.

시진핑은 국내외에 친구가 널리 퍼져 있다. 홍콩의 일부 기업가들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일찍이 그를 눈여겨봐 온 미국의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과도 교류가 깊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폭넓은 교류가 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황태자의 지위에 오르면서 태자당, 당 원로, 각 파벌, 군대 등 여러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분석이다. 이는 대권을 손에 쥐었을 때 무거운 부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저자는 “시진핑의 집권 사상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면서 “황태자로 있는 동안 근신하고 조심하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찬란한 치적은 없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했다.

장쩌민도 각별한 예우를 했던 아버지 시중쉰의 활동과 시진핑의 행적을 읽다 보면 살아있는 중국 현대사로서의 재미도 쏠쏠하다. 시진핑이 직접 쓴 ‘관덕(官德·관리의 도덕)의 중요성’ 등이 부록으로 들어 있다. 홍콩에서는 2008년에 발간됐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