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793>上好禮則民易使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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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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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은 爲政者(위정자)다. 好禮는 예를 좋아해서 예법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禮란 상하의 구별, 내외의 분별 등 올바른 질서를 가리킨다. 則은 조건(가정)과 결과를 이어주는 접속사다. 부릴 使는 統治(통치)한다는 말이다.

‘논어’는 보편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지만 역사적인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기에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내용도 있다. ‘憲問(헌문)’편의 이 구절도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을 부리기 쉽다’로 풀이한다면 평등사회의 이념과 부합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趙紀彬(조기빈·자오지빈)은 이 구절 등을 문제 삼아 공자의 계급주의적 한계를 비판하고 ‘논어’에는 민중 억압의 사상이 가득하다고 주장했다. 공자의 시대에는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위정자가 백성을 군사나 토목의 일에 동원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백성을 부린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백성을 도덕적 주체로 보았다. ‘泰伯(태백)’에서는 “군자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후덕하면 백성들은 仁의 마음을 일으키고, 옛 친구를 잊지 않으면 백성들은 경박하게 되지 않는다”고 했다. ‘헌문’의 이 구절에서도 지배자의 권력에 대해 말하지 않고 윗사람이 예를 좋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뜻은 ‘禮記(예기)’의 ‘禮達而分定(예달이분정)’과 관련이 깊다. 즉, 예가 위아래에 시행되어 사람마다 職分(직분)을 다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정약용도 使民은 백성을 征役(정역)으로 내몬다는 뜻이 아니라 백성으로 하여금 善(선)하게 한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구별되었던 옛날에도 윗사람이 공공의 질서인 예법을 지켜야 아랫사람을 잘 다스릴 수가 있었다.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지도층이 공적 가치와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구성원이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서 서로 양보하는 미풍을 쌓아 나가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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