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스포츠와 함께 하는 포토 트레킹]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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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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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나라, 미륵의 땅
앵글마다 아련한 신라혼

《옛 신라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 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번 웃어주면
천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이봉직의 동시 ‘웃는 기와’에서>》

① 청운교 백운교의 불국사.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잘 잡았다(송은숙 회원). ② 역광으로 잡은 무영탑(석가탑). 신비로움이 가득하다(김종원 회원). ③ 경주 한옥집의 솟대와 그 뒤의 전봇대. 예스러움과 현대문명의 어우러짐을 한 앵글에 담았다. 아이디어가 돋보인다(김광수 회원). ④ 담장 위의 돌탑과 아직도 푸르른 넝쿨식물. 저 멀리 애기단풍이 늦가을의 잔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조준일 회원). ⑤ 문무대왕 수중릉과 아침 갈매기의 비상. 구름 사이 붉게 비치는 아침 햇살과 갈매기의 힘찬 날갯짓이 인상적이다(김광수 회원). ⑥ 불 밝힌 안압지 야경. 연못에 어린 신라시대 복원건물이 이채롭다(김종원 회원). 경주=서영수 전문기자
① 청운교 백운교의 불국사.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잘 잡았다(송은숙 회원). ② 역광으로 잡은 무영탑(석가탑). 신비로움이 가득하다(김종원 회원). ③ 경주 한옥집의 솟대와 그 뒤의 전봇대. 예스러움과 현대문명의 어우러짐을 한 앵글에 담았다. 아이디어가 돋보인다(김광수 회원). ④ 담장 위의 돌탑과 아직도 푸르른 넝쿨식물. 저 멀리 애기단풍이 늦가을의 잔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조준일 회원). ⑤ 문무대왕 수중릉과 아침 갈매기의 비상. 구름 사이 붉게 비치는 아침 햇살과 갈매기의 힘찬 날갯짓이 인상적이다(김광수 회원). ⑥ 불 밝힌 안압지 야경. 연못에 어린 신라시대 복원건물이 이채롭다(김종원 회원). 경주=서영수 전문기자


경주 남산은 부처의 나라이다. 미륵의 땅이다. 골짜기마다 부처들이 가득하다. 옛 절터나 돌탑도 부지기수이다. 웬만한 바윗돌엔 부처가 새겨져 있다. 돌부처들은 가부좌를 틀고 있다. 목 없는 불상도 의연하게 앉아있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 표현이 빈말이 아니다. ‘절집들이 하늘의 별처럼 널려 있고, 탑들은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것같이 줄지어 있다(寺寺星張 塔塔雁行).’

가장 높은 곳이라 해봐야 494m. 남북 8km, 동서 4km. 온통 화강암으로 된 산이다. 돌이 희고 겉에 작은 구멍이 많아 조각하기엔 안성맞춤. 토함산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도 이곳 돌을 가져다 다듬었다. 김시습이 머물면서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용장사 터와 포석정 터 그리고 신라 건국설화 나정이 자리 잡고 있다. 40여 골짜기엔 절터 122곳, 돌부처 57개, 돌탑 64개, 왕릉 13곳, 고분 37곳 등 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절집이다. 한마디로 지붕 없는 노천박물관이다. 신라인들이 만든 야외조각전시장이다. 정일근 시인은 ‘경주 남산은 신라인의 마음을 싣고 흘러가는 한 척의 배’라고 말한다.

남산 3릉 계곡은 소나무 숲이 일품이다. 3릉은 8대 아달라왕(재위 154∼184), 53대 신덕왕(재위 912∼917), 54대 경명왕(재위 917∼924)의 무덤. 소나무보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넉넉하게 서있다. 용 비늘 몸피를 두른 채 비뚤배뚤 제멋대로 서있다.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고 발랄하다. 태껸 겨루기 품세 같다. 어깨를 들췄다 놓았다 으쓱으쓱, 무릎을 굽혔다 폈다 굼실굼실, 몸을 버드나무처럼 휘었다 폈다 능청능청…. 서라벌 밝은 밤에 겅중겅중 몸짓을 하던 처용의 춤사위가 그랬을까. 몸을 좌우로 흔들며 우쭐우쭐…. 논두렁에서 막걸리 한잔에 어깨춤 들썩이는 농부님들 같다. 사진작가 배병우(59)가 왜 경주 남산의 소나무들을 카메라에 즐겨 담는지 알 것 같다.

선덕여왕 무덤도 서라벌 동쪽 낭산(狼山)의 호젓한 소나무 숲에 있다. 역시 용비늘 갑옷의 소나무들이 이리저리 소맷자락 휘날리며 탈춤을 춘다. 점잔을 빼고 서있는 불국사 앞마당 늙은 소나무들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낭산은 남북으로 길게 늑대처럼 엎드려 있다. 산허리가 잘록한 서라벌의 진산. 그 뒤가 석굴암 불국사가 자리 잡고 있는 토함산이다. 무덤 아래엔 호국사찰이며 신라향가에 나오는 사천왕사 절터가 보인다. 서라벌은 토함산 낭산(동), 선도산 단석산(서), 소금강산(북), 남산(남)으로 둘러싸인 불국토(佛國土)였다.

선덕여왕릉 제대(祭臺) 위엔 억새꽃과 국화꽃 다발이 놓여있다. 누가 놓았을까. 여성들의 발길이 붐빈다. 어느 중년 아주머니는 공손히 손을 모으고 두 번 절을 올린다. “여왕은 할머니 나이에 왕에 올랐다는 데, TV 드라마엔 왜 그리 예쁘고 젊게 나올까?” 누군가 소리에 모두들 까르르 웃는다.

경주 남산 부처들의 얼굴은 대부분 소박하다. 보리밥 알갱이처럼 선이 정겹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그린 엄마 아빠 얼굴을 닮았다. 불상들도 울퉁불퉁 투박하다. 세련된 것은 몇몇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이름 없는 신라 서민들이 서투르게 빚었기 때문이다. 신라 왕족이나 귀족들은 불국사 분황사 황룡사 사천왕사 같은 크고 화려한 절에 다녔다. 그곳에서 나라가 잘되기를 빌었다. 그런 절들은 백제 아사달이나 아비지 같은 프로 석공들을 불러다가 만들었다. 서민들은 남산의 ‘산신 할매’ 같은 부처들에게 가족의 행복을 빌었다. 남산은 서민들이 만든 미륵보살의 땅이었다. 불국사는 왕족과 귀족들이 만든 또 다른 ‘부처국가 신라’였다.

‘불국사 대웅전 뜨락에 서서/천년 세월/풍우에 깎인 돌과 함께/탑을 떠나지 않는/백제의 석공 아사달이여/돌에 새겨진 연꽃은 지지 않고/사시사철 피어있다/연못에 몸을 던진 아사녀의 혼이/지금도 연꽃으로 피어있다’(김종해의 ‘무영탑’에서)

안압지는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든 연못이다. 외국의 귀한 손님이나 군신들의 연회 장소라고나 할까. 온갖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소 말 돼지 개 노루 산양 사슴 멧돼지 꿩 노루 닭 거위 기러기 뼈가 발견됐다. 저녁 불빛에 어른거리는 연못이 아련하다.

931년 이곳에서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재위 927∼935)이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해 잔치를 벌였다. 경순왕은 왕건에게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인 신라의 처지를 호소했다. 왕건은 아무 말이 없었다. 기다리면 머지않아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신라인들은 어떻게 놀았을까. 예나 지금이나 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건 똑같았다. 참나무주사위인 주령구(酒令具)를 던져 거기 써있는 벌칙에 따랐다. 주령구는 6각형이 8개면, 정사각형이 6면인 14면체. 정육면체인 서양 주사위와는 다르다.

벌칙엔 오늘날의 원샷(술잔 비우고 크게 웃기·飮盡大笑), 러브샷(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曲臂則盡), 삼배(술 석 잔 한 번에 마시기·三盞一去), 두 잔이면 즉시 버리기(兩盞則放),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自唱自飮)가 있다.

노래 벌칙도 재밌다. 마음대로 노래 청하기(任意請歌), 월경이라는 노래 한곡 부르기(月鏡一曲), 스스로 괴래만이라는 노래 부르기(自唱怪來晩). 짓궂은 벌칙이 없을 리 없다. 무반주 댄스인 노래 없이 춤추기(禁聲作舞), 여러 사람 콧잔등 때리기(衆人打鼻), 얼굴 간질여도 참기(弄面孔過), 누가 덤벼들어도 참기(有犯空過). ‘시 한 수 읊기(空詠詩過)’나 ‘더러운 것 버리지 않기(醜物莫放)’는 양념 벌칙이다.

‘보름달 뜨는 저녁/마음의 눈도 함께 떠/경주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 따라/돌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노라면/산이 사람들에게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 길은/달빛 아니라도 환한 길/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정일근의 ‘길’에서)

경주=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선덕여왕과 미실의 진짜 관계는…
선덕여왕 김덕만(?∼647·재위 632∼647)은 한민족 최초 여왕이다. 그만큼 여성이기 때문에 시련도 컸다. 그냥 선덕왕이 아니라 ‘선덕여왕(善德女王)’이라 부르는 것도 여성차별적인 뜻이 들어있다.

643년 당 태종은 신라 사신에게 “그대들은 여인을 임금으로 삼고 있으니 백제 고구려의 업신여김을 받고, 임금의 도리를 잃고 있다. 내 왕족을 보내 신라 왕으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647년 상대등(현 국무총리급)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명분도 “여자 군주는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1075∼1151)은 “신라는 여자를 세워 왕위에 있게 하였으니 진실로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고 말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565∼632·재위 579∼632)의 맏딸이다. 셋째 딸이 서동요로 유명한 선화공주(삼국유사). 왕위에 오른 것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50대 초반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어느 정도 꿰뚫는 나이였기에 정권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조카인 김춘추(603∼661)와 군부세력 리더인 김유신(595∼673)의 뒷받침도 컸다. 만약 화랑세기 필사본이 진짜라면 거기에 나오는 미실(?∼607)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미실은 진흥왕(재위 540∼576), 진지왕(재위 576∼579), 진평왕 3대에 걸쳐 40여 년 동안 신라 조정을 뒤흔들었다. 그녀는 세 왕과 모두 관계를 맺었으며, 사다함 설원랑 등 대표 화랑들도 애인으로 삼았다. 607년 미실이 죽을 때, 선덕여왕은 감수성 많은 20대 초중반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미실이라는 인물이 실존인물이었는지는 미지수이다. 화랑세기 필사본 자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엔 미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선덕여왕 시대 신라는 외톨이였다. 백제와 고구려에 철저히 따돌림당했다. 당나라엔 조공을 바치며 겨우 선을 잇고 있었다. 백제 의자왕에게 40여 개 성을 빼앗긴 데 이어 대야성(현재 합천)까지 함락됐다. 백제군은 서라벌 턱밑까지 쳐들어온 적도 있었다.

선덕여왕은 호국불교를 장려하며 왕권을 강화했다. 자장법사(590∼658)를 앞세워 분황사와 황룡사 9층탑(80m) 등을 세웠고, 첨성대(9.2m) 등을 건립하여 내부 반발세력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비담의 반란 와중에 죽었다. 병들어 죽었는지 아니면 반란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트레킹 정보│
▽ 자전거여행=경주는 자전거도시이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되어 있다. 하루 5000∼6000원이면 빌릴 수 있다. 경주역전자전거대여점 054-749-8268, 삼천리자전거경주대리점 054-742-1688, 일성자전거대여점 054-772-4150, 보문자전거대여점 054-748-3146

◇ 교통편 ▽ 비행기=서울김포∼울산공항(울산∼경주 시외버스), 서울김포∼포항공항(포항∼경주 시외버스) ▽ 기차=KTX 서울∼동대구(1시간 40분)→동대구에서 경주행 새마을기차 환승(1시간 10분) ▽ 고속버스=서울강남고속터미널∼경주(4시간 30분)

◇ 먹을거리 ▽ 보문단지 입구 북군동 식당동네엔 음식점이 20여 군데나 있다. 대체로 맛이 기울지 않는다. 전주비빔밥(삼합 홍탁) 054-745-0279, 맷돌순두부 054-745-2791, 정화식당(순두부, 우거짓국) 054-745-2313, 흥부네(순두부) 054-748-5688 ▽ 경주역 부근 해장국거리엔 해장국집이 약 15곳 있다. 대부분 선짓국, 추어탕, 콩나물메밀묵해장국을 판다. 팔우정해장국 054-742-6515, 할매해장국 054-743-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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