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실 땐 몰랐네요,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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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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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 회상 산문집 출간

시인 신달자 씨(왼쪽)와 아버지 신중길 씨가 1991년 숙명여대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함께했다. 사진 제공 서정시학
시인 신달자 씨(왼쪽)와 아버지 신중길 씨가 1991년 숙명여대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함께했다. 사진 제공 서정시학
시인 신달자 씨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신 씨는 아버지 사무실에서 아버지가 숨겨 놓은 일기장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건강, 돈, 친구, 여자까지 풍성하고 완벽해 보이던 아버지였지만 일기장 속에는 외로움에 눈물 흘리는 연약한 40대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수십 년이 흘러 신 씨는 “나는 아버지의 사랑도, 방황도, 외로움도, 가정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던 떠돌이 영혼도 다 알겠다”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문인들이 아버지를 회상하며 쓴 산문을 모은 ‘아버지, 그리운 당신’(곽효환 최동호 엮음·서정시학)에 실린 일화다. 24일 출간된 이 책에는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 ‘천변풍경’의 박태원 등 당대의 문인들이 어떤 아버지였는지를 회고하는 자녀들의 글도 함께 실렸다. 계간 ‘대산문학’에 연재됐던 원고를 주로 실었고 신달자 씨, 소설가 박범신 씨 등은 이번 책을 위해 새로 글을 썼다.

“나 자신이 싫었고 아버지가 몹시 미웠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어야 했고, 그 결단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공지영 ‘내 인생의 나침반’)

소설가 공지영 씨는 1980년대 대학에 들어가 아버지와 멀어졌던 기억을 되살린다. 아버지는 중고교 시절 매일 아침 공 씨를 학교에 데려다줄 정도로 자상했지만 공 씨가 학생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안 뒤 공 씨를 간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70이 넘은 나이에도 바쁘게, 멋쟁이로 사는 아버지에게 공 씨는 “내가 그와 너무도 닮은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기쁘다”고 말한다.

시인 황동규 씨의 아버지는 소설가 황순원 씨. 황동규 씨는 “아버지와 아들은 한집에서 살며 체험을 너무 많이 공유하기 때문에 둘 다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하기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시인 한강 씨는 새벽부터 들리던 타자기 소리와 늘 피곤해 보이던 모습으로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을 추억한다.

어린시절의 추억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뒤에는 생전에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남는다. 박범신 씨는 몸이 아팠던 아버지가 병마와 싸우던 모습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흉포한 생로병사의 존재론적 시간과 사투를 벌일 때 나는 아버지의 그 고통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갖고 있지 못했다”고 가슴 아파한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어언 30년이나 된다. 놀라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성찰은 깊어지고 회한은 아프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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