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 실연… 이젠 ‘이별 문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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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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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좋은 이별’ 낸 김형경 씨

사랑하는 연인이 이별을 통보할 때, 가족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은 이별의 충격, 상실의 아픔으로 마비나 고통, 분노 등을 느낀다. 그 결과 비이성적인 상태에서 엉뚱한 결정을 내리거나 오랫동안 심리적, 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린다. 이별 후의 애도작업을 잘 이행하는 법은 그래서 중요하다.

산문집 ‘사람풍경’, 소설 ‘꽃피는 고래’ 등을 통해 내면의 상처와 상실의 아픔을 파고들던 소설가 김형경 씨(49·사진)가 신작 산문집 ‘좋은 이별’(푸른숲)을 펴냈다. 작가는 이별에 적절히 대처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들을 문학작품 속 예시들과 자전적 경험, 풍부한 심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제시해준다.

예를 들어 저자는 실존주의 문학의 걸작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색다르게 읽어낸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꾸벅꾸벅 졸거나 질식당할 듯한 더위에 시달리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저자는 이것을 ‘실존주의의 명제’가 아니라 ‘마비된 감각에 대한 은유’로 해석한다. 뫼르소는 상실의 충격에서 오는 일종의 마비증세를 겪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부영사’ ‘연인’ 등 성에 대한 관심이 과잉 반영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에 대해서는 불행하고 비정상적이었던 유년시절에 대한 애도반응이 자기성애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문학작품 속 등장인물이나 작가의 생애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것 외에도 작가가 직접 겪었던 실연의 충격이나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서 겪어야 했던 상실감도 접할 수 있다. 20대 중반부터 근 20년간 심리학 공부를 해온 작가는 이 책을 “그간의 심리 공부와 치료를 마무리 짓는 책”이라고 말했다.

“이별이란 소중한 것을 잃는 일인 만큼 굉장히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가 아픈 건 상실로 인한 아픔을 치료받지 않고 그대로 두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별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문화도 없어요. 책을 쓰며 감정을 추스르고 잘 이별하는 문화가 됐으면 했습니다.”

각 에세이의 말미에는 ‘상실의 목록 적어보기’ ‘생산적인 대체대상 갖기’ 등 이별의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기 위한 실용적인 도움말도 수록돼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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