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시간 앞에 장사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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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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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의 실내, 교통용 볼록거울에 비친 한 남자와 아파트, 초록색 버스와 군용 앰블란스가 서 있는 도로.

전시장의 네 벽면에 장소는 같지만 다른 시간과 상황을 표현한 두 개의 그림이 짝을 이뤄 연속적으로 걸려 있다. 일상의 공간과 찰나적 순간을 소재로 다양한 화면구성과 변화를 시도한 24점의 연작이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란 뜻에서 이를 ‘만유사생(萬有寫生)’으로 명명한 작가는 회화의 의미에 대해 “시각적 호흡”이라고 풀이한다. 구체적 일상에서 출발한 작업임에도 흘러내리는 듯한 물감 흔적이 남은 작품들은 서로 어우러지며 기이한 음계의 환상 변주곡을 들려주는 것만 같다.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유근택 씨(44)의 ‘만유사생’전은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의 다채로운 회화적 실험을 보여준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풍경을 채집해 이를 지각하는 방식에 대한 물음을 작업으로 펼쳐낸 자리다. 동양적 재료인 호분과 서구의 재료인 과슈를 뒤섞어 제작한 작품들은 모호한 윤곽과 흐릿한 색채를 통해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의 이쪽저쪽을 갈라놓은 물줄기들을 그린 신작 ‘분수’시리즈를 비롯해 사막의 풍경 속에 책장, 장난감 샹들리에 등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며 돌아가는 ‘세상의 시작’, 잘 차려진 테이블의 음식이 행사가 끝날 때쯤 폭격 맞은 듯 흐트러진 모습을 담은 ‘만찬’ 시리즈 등이 선보였다. 되풀이되는 일상의 시공간을 압축해 낯설고 무질서한 풍경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이다. 작가에 따르면 “동양화의 관념적 정신주의에 대해 몸으로 느끼는 무거움을 땅으로 끌어내리려는 작업”이다.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모든 것을 변질시키는 시간의 흐름, 소멸의 힘에 집중돼 있다. 작가는 “궁극적으로 나의 회화, 그리고 시간이 가진 유한성의 문제에 대해 계속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것은 결국 시간에 대해 예술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02-736-4371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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