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don’t know” 영어로 묻고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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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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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스님 수행 국제선원 계룡시 무상사 법회 가보니

계룡산 무상사 법회에는 법상(스님이 법문하는 높은 연단)이 없다. 스님들은 일방적인 법문보다 질의응답으로 외국인 불자들의 깨달음을 유도한다. 불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조실 대봉 스님(왼쪽)과 폴란드 출신 비구니 관미 스님. 계룡=민병선 기자
계룡산 무상사 법회에는 법상(스님이 법문하는 높은 연단)이 없다. 스님들은 일방적인 법문보다 질의응답으로 외국인 불자들의 깨달음을 유도한다. 불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조실 대봉 스님(왼쪽)과 폴란드 출신 비구니 관미 스님. 계룡=민병선 기자
“Put your hands on your belly… just look inside and have your self-question(두 손을 배 위에 얹고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며 ‘진정한 나’를 찾아보세요).”

선방(禪房)은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 대낮인데도 어두웠다. 숨소리조차 귀에 거슬리는 이곳에 스님의 고함이 울렸다. “Focus on what you think(생각에 집중하세요).” 불자들은 가부좌를 하고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다. 30여 분이 흐른 뒤 죽비 소리와 함께 커튼이 걷히고 참선을 마쳤다.

25일 충남 계룡시 계룡산 자락의 무상사. 외국 출신 스님 10여 명이 수행하고 있는 국제선원이다. 국제선원답게 이곳에서는 매주 일요일 외국인을 위해 영어로 참선과 법회를 진행한다. 이날엔 미국,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에서 온 20여 명의 다국적 불자가 찾았다.

무상사는 40년 가까이 해외포교에 힘썼던 숭산 스님(2004년 열반)이 2000년 창건했다. 숭산 스님은 32개국에 국제선원 120여 개를 열어 외국인 스님을 양성해왔다.

국내거주 다국적 불자 20여명 “법문 어렵지만 마음 편해져”
저녁공양엔 밥-산나물 함께 빵-요구르트-버터도 올라와

외국인 불자들에게 참선법을 지도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관행 스님.
외국인 불자들에게 참선법을 지도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관행 스님.
이날 오후 1시 반부터 진행된 참선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관행 스님이 지도했다. 미국 보스턴 근교의 빈민가 출신인 스님은 9남매의 장남으로 마약,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자랐다. 스님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자아를 찾는 일에 열심이었다. 청소년기에 우연히 태권도장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불교의 참선을 접했다. 1986년 미국에서 포교 중이던 숭산 스님을 만나 재가불자로 수행하다 1997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 화계사에서 출가했다.

참선이 끝나고 법회가 이어졌다. 법회는 스님들과 신도들 간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폴란드 출신 비구니 관미 스님이 먼저 화두를 던졌다.

스님은 “열다섯 살 때 숭산 스님의 책 ‘부처님 머리 위에 재를 털며’를 읽고 불교에 입문하게 됐다”며 “20대 중반에 출가해 10년 넘게 수행해왔지만 어떤 것이 진정한 수행법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숭산 스님의 책을 내게 권했던 친구는 지금 수녀가 됐다”며 “인생은 역시 미스터리의 연속”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 출신의 대봉 스님은 “수행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며 “수행의 순간마다 얻은 경험을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스님은 또 “선 수행을 할 때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어떤 생각에도 집착하지 말고 그대로 흘려보내라”며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봉 스님의 말에 외국인 불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불자는 “10년 넘게 수행했는데 아직도 통찰을 얻지 못했다면 도대체 수행이 의미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봉 스님은 “30년 넘게 수행했지만 아직도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며 “10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어 대봉 스님은 질문자에게 큰 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What is inside, What is outside, What is boundary(안과 밖은 무엇입니까. 또 안과 밖의 경계는 무엇입니까).” 좌중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고 대봉 스님은 껄껄 웃었다. 머뭇거리던 불자들도 이에 화답하듯 소리 내어 웃었다.

2년 전 남아공에서 온 코렛 샤샤 씨는 충남 청양군 정산중 영어교사다. 그는 “일요법회에 1년 넘게 매주 나오지만 대봉 스님의 말은 여전히 어렵다”며 “그래도 고민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전했다.

대전대 교환학생인 인도네시아 출신 케빈 타나디 씨는 “인도네시아 불교는 기복신앙인 데 비해 한국불교는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중요시하는 게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법회를 마치고 참석자들은 스님들과 저녁공양을 함께했다. 식탁에는 잡곡밥, 산나물과 함께 빵, 치즈, 요구르트, 버터가 차려졌다. 스님들은 능숙한 젓가락질로 발우에 담긴 밥을 비운 뒤 빵에 버터를 발랐다. 외국인 불자들은 밥보다 빵과 치즈, 요구르트에 먼저 손이 갔다.

계룡=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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