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스포츠와 함께 하는 포토 트레킹]정선 민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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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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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을 텅 비운 억새는 잠들지 않는다

정선 민둥산(1118.8m)은 거대한 돔구장이다. 7분 능선부터 온통 낙지머리이다. 그곳에서 억새풀이 바람에 흐느낀다. 덕유산 소백산은 산마루에 천년주목을 키운다. 민둥산은 산잔등에 은빛 풀밭을 펼친다.

민둥산은 중국 진시황제릉보다 더 큰 무덤이다. 엎어놓은 둥근 밥사발 뫼이다. 거대한 ‘시루떡 솥’ 즉, 시루봉(甑山·증산)이다.

갈대는 축축하다. 그것들은 늘 강가나 냇가에서 노래를 부른다. 갈대는 풍요롭다. 억새는 황무지나 거친 산비탈에서 자란다. 산마루에서 하늘을 향해 흔들린다. 하지만 결코 갈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정선 증산초등학교는 민둥산 들머리이다. 민둥산역(옛 증산역)에서 가깝다. 천천히 나무늘보처럼 걸어도 10여분 거리. 고한버스터미널에서 증산초등학교까지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한다. 정선은 요즘 목마르다. 골짜기 밑바닥이 신발 깔창처럼 혓바닥을 내놓고 있다.

억새밭은 아득하다. 잔솔밭을 2, 3곳 지나고, 너덜밭도 두 개쯤 거쳐야 한다. 깔딱고개는 필수코스. 세상의 모든 것은 힘을 뺀 뒤에야 비로소 뭔가가 보인다. 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억새밭을 생각하며 산을 오른다. 카메라를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메마른 숲길. 앵글이 답답하다. “휴우∼.” 한숨을 내쉬며 애가 닳는다. 산은 오를수록 점점 하늘이 커진다. 가랑나무(떡갈나무) 잎들이 가랑가랑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억새밭은 정상 0.6km 못 미친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봉우리 일대 수십만 평이 온통 은물결이다. 옛날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이다. 봄에 산나물을 많이 캐려고 늦가을에 불을 놓아 큰 나무가 모두 타 죽었다.

사람보다 껑충 큰 억새밭. 말라비틀어진 쑥부쟁이와 개망초. 훤칠한 산쑥들도 마른 쑥대머리가 된 지 오래. 오직 억새들만 너울너울 춤을 춘다.

억새밭 너머로 붉은 해가 걸렸다. 한순간 발그레 물든 억새밭. 군데군데 서있는 앉은뱅이 소나무. 문득 그 붉은 바다에 몸을 누인다. 어찔어찔 배가 흔들린다.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이 배는 어디로 가는 배일까. 텅 빈 마른 몸에서 피워낸 은빛 너울. 몸이 흔들릴 때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아슴아슴하다.

몰운대(沒雲臺)는 깎아지른 뼝대(‘벼랑’의 정선사투리)이다. ‘구름도 발을 헛디뎌 절벽 밑으로 꺼진다’는 뜻인가. 절벽 끝에 서면 발바닥이 근질근질하다. 책 수만 권이 쌓여있는 것처럼 돌이 켜켜로 누워있다. 그 수직 벽엔 붉은 돌단풍이 기어오르다가 지쳐 대롱거린다. 높이는 200m나 될까. 어지럽다. 절벽 정수리에는 500년이 넘는 소나무가 깊게 박혀 있다. 소나무는 육탈되어 뼈만 남았다. 하늘과 절벽의 두 문짝을 여닫는 돌쩌귀 같다. 암벽과 허공의 경계선에서 완강하게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선승. ‘앉은 채 입적(坐脫立亡·좌탈입망)’한 오대산 상원사의 방한암 스님(1876∼1951)이 떠오른다. 몰운대는 민둥산에서 화암약수 쪽으로 내려가면 나온다. 바람에도 흐느끼는 시인들이 이런 곳을 지나칠 리 없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강물에 투신하는 건 차마 아득한 눈발뿐/몰운대는 세상의 끝이 아니었네…강물은 부드러운 손길로 몰운대를 껴안고/그곳에서 나의 그리움은 새롭게 시작되었네/세상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었네’ (박정대 ‘몰운대에 눈이 내릴 때’에서)

몰운대 주변엔 소금강 계곡이 있다. 주문진 소금강과는 또 다르다. 그 절벽에도 돌단풍들이 피투성이 몸으로 악착같이 기어오른다. 바위틈엔 연보라 쑥부쟁이 꽃이 뿌리를 박고 있다. 구불텅 소나무가 지악스럽게 버티고 서서 웃는다. 노란 감국꽃이 절벽을 허리띠처럼 두르고 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담담하게 꽃을 피워내는 들국화. 거칠고 메마른 땅만 찾아서 둥지를 트는 향기 가득한 감국꽃. 사람은 누구나 벼랑에 뿌리를 박고 산다. 꺼억꺼억 울며, 아픈 다리 질질 끌며 그렇게 한평생 살다간다.

정선=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 트레킹 정보|

◇교통 ▽승용차 △서울→영동고속도로→진부 나들목→59번 국도→정선 △서울→영동고속도로→새말 나들목→42번 국도→안흥→31번 국도→평창→42번 국도→미탄→정선 △서울→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영월 삼거리→미탄→정선 △서울→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영월→38번 국도→사북→고한 ▽시외버스=서울 동서울터미널 정선 고한 사북 ▽기차=서울청량리→태백선→민둥산역(옛 증산역 033-591-1069) ▽정선관광열차=매일 서울역 출발하여 정선역(5일장터)을 거쳐 아우라지역 도착. 가리왕산 동강 민둥산코스에서 MTB 가능.

◇먹을거리=콧등치기 청원식당(033-562-4262), 곤드레정식 국향(033-563-9967), 황기백숙 산골토종닭집(033-591-5007), 감자붕생이 아라리촌주막(033-563-0050)

◇숙박=락있수다 펜션(010-9081-9387·평일엔 20∼30% 할인), 황토참숯민박(033-562-7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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